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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진 PDI 당청사

기사입력 2011.07.2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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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7사태 15주년을 맞은 이날 희생자의 가족과 PDI 옹호자들이 청사가 철거된 빈터에 모여 기념행사를 열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PDI 당청사

인도네시아 5대 대통령을 역임했고 현재 투쟁민주당(PDI-P) 총재인 메가와띠 수까르노뿌뜨리가 정계에 입문할 수 있게 한 디딤돌이 된 사건인 7.27 사태’의 기념행사가 인도네시아민주당(PDI) 중앙당청사 터에서 27일 열렸다.  

1996년 7월 27일에 중부자카르타 잘란 디뽀느고로에 위치한 PDI 중앙당 청사에서 민주화 인사들이 모여 독재자인 수하르토를 비판하자, 수하르또 정권이 PDI 중앙당 청사를 습격해 많은 희생자를 냈다.

7.27사태 15주년을 맞은 이날 희생자의 가족과 PDI 옹호자들이 청사가 철거된 빈터에 모여 기념행사를 열었다.

당시 연단에 올라 수하르또 타도를 외쳤던 민주화 인사인 리드완 사이디는 “이 곳은 15년 전 우리가 수하르또에 저항하며 피를 흘린 곳인데, PDI-P 지도자들은 이 건물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곳에 쇼핑센터가 들어서는 것을 개탄했다.

수하르또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가 옥고를 치렀고 당시 사태의 또 다른 목격자인 목타르 빡빠한은 “개혁의 상징이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됐다”며 청사 매각을 승인한 메가와띠를 정면으로 비난했다.

빡빠한은 “당사를 다시 볼 수 없게 돼 슬프고 메가와띠에게 크게 실망했다”며 “당사 건물 철거는 수까르노 가문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것이고, 그녀의 아버지인 수까르노의 영혼도 편히 쉬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한편 이날 메가와띠와 투쟁민주당 고위 당직자들은 기념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메가와띠는 1987년 정계에 입문하면서 수까르노의 딸이라는 후광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93년에 PDI 전당대회에서 메가와띠가 총재로 선출되자 위기감을 느낀 수하르또는 메가와띠 당선을 인정하지 않았고, 1996년에 당총재 선거를 다시 열어 수르야디를 총재로 세웠다. 이에 메가외띠는 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PDI는 친메가와띠와 친수르야디 계파로 갈라졌다.

이후 메가와띠에 대한 수하르또의 탄압이 거세질 수록 그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높아졌다. 1996년 7월 27일 수하르또의 지원을 업은 수르야디는 PDI 중앙당사를 습격했는데, 이 사건으로 메가와띠 지지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7.27사태 당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자카르타사령부 사령관이었으나 유혈사태에 대해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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