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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서 한국인에게 명절이란?

기사입력 2012.09.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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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dailyindonesia.co.kr)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인 이둘피트리(르바란)가 지났다. 올해 이둘피트리 연휴에는 집에서 쉬면서 밀린 잠을 자고 책도 보고 운동도 하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운전기사가 휴가를 가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으니 나갈 일을 만들지 않았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도 시골에 가서 가능한 한 집도 어지르지 않은 채 식사도 외식을 하거나 미리 사놓은 빵으로 해결했다.

▲ 자카르타 근교 리뽀 까라와찌의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전경. 이둘피트리 연휴에는 평소보다 하늘이 맑다.


명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하늘이다. 공장도 서고 자동차도 현저히 줄어드니까 하늘이 파래지고 시원한 바람도 더 많이 분다. 도로에 오토바이가 줄어드니 엔진소리도 줄어서 창문을 열어도 시끄럽지가 않다. 이둘피트리에는 관공서와 기업이 모두 쉬고 상점도 문을 닫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거나 여행을 떠남에 따라 도시도 휴식을 한다. 

23년 전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 성탄절과 신정이 공휴일이었지만 조용했고, 음력설은 공휴일이 아니어서 출근했다. 당연히 명절 또는 축제라는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4월에 라마단이 시작되자 낮에는 조용해도 밤이 되면 부까뿌아사(무슬림들이 단식을 마친 후에 하는 첫 식사)를 한다고 집집마다 소란스러웠고 이둘피트리가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들떴다. 성탄절과 신정에는 조용했던 방송국과 상점들도 이둘피트리에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회사에서 현지인들에게 1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지급했고, 여기저기 거래처에도 선물을 보냈다. 라마단 마지막 날인 이둘피트리 전야에는 모든 이슬람사원에서 밤새 딱비란(Takbiran)을 독송했고,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생수통이나 드럼통을 두드리며 거리를 누볐고 곳곳에서 쏘아 올린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 자카르타 한 쇼핑몰이 이둘피트리를 앞두고 아랍풍으로 디스플레이를 했다.


한국에서 명절이었던 날들이 인도네시아에서는 조용하게 어떤 때는 일을 하면서 지나갔다. 한편 인도네시아에 오기 전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이슬람 명절에는 전체적으로는 축제분위기였지만 나에게는 남의 명절이었고 오히려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도 없고 상점까지 문을 닫아 불편한 시간들이 되었다. 지금이야 백화점과 식당이 이둘피트리 당일에도 영업을 하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업소들도 최소한 이틀은 문을 닫았다. 혹시 열더라도 채소와 과일 같은 신선식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고, 식당 종업원도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고향으로 떠나서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택시기사들도 귀향을 해서 거리에서 택시 잡기가 어려웠다. 

이슬람력은 현재 세계의 표준이 된 태양력보다 11일 가량 짧기 때문에 매년 이둘피트리 날짜가 당겨진다. 내가 처음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 이둘피트리가 5월이었는데 올해는 8월 중순이 됐다. 1997년 말에 아시아 통화 위기가 터지고 이듬해 독재자 수하르토 대통령이 하야한 후 인도네시아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서구 문화가 대거 유입되고 쇼핑몰과 방송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중국문화가 허용되면서 성탄절과 음력설이 인도네시아에서 대표적인 명절로 자리잡게 됐다. 도시화와 산업화는 대가족의 해체를 가져왔다. 교통과 관광산업의 발달로 예전보다 고향에 가기가 수월해졌음에도, 귀향 대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늘었고 일부 사람들은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가 없는 불편함을 덜기 위해 시내 호텔에 투숙해 연휴를 보내는 새 풍속도 생겼다.

▲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인구의 65% 가량 되지만 최근에는 쇼핑몰과 방송의 영향으로 크리스마스와 중국설도 큰 명절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명절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전통문화와 가족 또는 고향이라는 공동체가 함께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 내가 맞는 추석과 설에는 고향의 가족과 풍습이 빠진다. 물론 송편과 떡국을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허전하다. 이둘피트리도 우리에게 인도네시아 문화나 이슬람 신앙에 대한 내제화된 공감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휴일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래서인지 고국이 아닌 해외에서 보내는 명절은 그냥 휴일일 뿐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자카르타 위성도시인 땅그랑에 사는 주부 정안순 씨는 이둘피트리에 대해 남편과 자녀가 모두 쉬기 때문에 가족여행을 하기 좋은 시기라고 했고, 이웃인 이미연 씨는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 등 고용인에 대한 고마움을 새롭게 느낄 수 있으면서 남편과 자녀들이 가사일을 돕게 돼 가족끼리 가까워질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11학년에 다니고 있는 추이영 학생은 부모님이 집안일을 도와주는 현지인들에게 보너스를 주면 이둘피트리가 됐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에게는 쉬는 날 또는 여행할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노진수 학생(JIKS, 11)은 추석이나 설날은 별다른 느낌이 없고 이둘피트리는 가사도우미가 없어서 불편한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재미 학생(JIKS, 9)은 설날은 한국의 할머니께 전화하는 날일뿐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했고, 현정원 학생(JIKS, 8)은 이둘피트리와 설날 모두가 폭죽 터트리는 날이라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 자카르타 한인성당의 땅그랑 공소에서 설날 미사를 마친 후 어린이들이 신부님과 성당 어른들에게 새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고 있다.


한편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에 대해서는 정안순 씨와 이미연 씨 모두 해외에서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우리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미연 씨는 지난해부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며, 한국과 달리 음식을 준비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덜 부담이 되고 가족이 모인다는 점에서 오히려 파티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역시 이들의 이웃인 김세재 씨는 우리 풍습을 알려주기 위해 자녀에게 이웃에 세배를 다녀오게 하고 송편을 직접 빚기도 한다고 말했다.

앞에 인용한 대답이 모든 교민의 생각을 대표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인도네시아 명절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 반추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고 다시 1인 가족으로 변화하고 전통적인 풍습이 퇴색하면서 설날이나 추석 등이 명절이기보다는 그냥 연휴이자 여행할 수 있는 시기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도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귀성인구가 감소하고, 쇼핑몰 등 현대식 상점이 발달하고 마케팅의 일환으로 성탄절과 음력설 뿐만 아니라 발렌타인데이와 할로윈데이 등 외국 명절과 풍습이 알려지면서, 상대적으로 이둘피트리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졌다.    

이제 명절은 고향이 아닌 백화점과 여행지에서 보내는 날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나는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이어서 어느 명절도 완벽하지 못하다 보니, 내겐 명절이 밀린 일 또는 못 만난 사람을 만나는 기회이거나 여행하는 시간이 됐다. 이곳에 있는 다른 외국인들도 나처럼 느낄까? 또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진다. 

▲ 이둘피트리 연휴에 여행을 하는 사람도 많다. 사진은 지난 이둘피트리 연휴 기간에 중부자바의 디엥고원의 모습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서리를 볼 수 있는 드문 관광지다.  
[데일리인도네시아 기자 dailyind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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