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이희아 콘서트를 함께 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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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아 콘서트를 함께 한 후에...

기사입력 2013.12.0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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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천성사지기형 1급 장애를 갖고서도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이희아(28) 양의 피아노 콘서트가 지난 30일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나래홀에서 열렸다. 이희아 양이 연주하는 쇼팽의 '즉흥환성곡'에 맞춰 발레리나 김은지 씨가 현대무용을 하고 있다.


그대의 역할을 사는 것에 대하여.
이희아의 엄마여서 행복한 것

:채인숙 (다큐멘터리 방송작가)

 
나도 스물 아홉에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될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심지어 임신 기간 동안에도 나는 엄마가 되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인지하질 못한 것 같다.. 부끄럽다…) 덜컥 엄마라는 이름을 달게 된 것이다. 나는 서툴렀고, 늘 우왕좌왕 헤맸고, 급기야는 징징 짜면서 나는 혼자 살았어야 했다고 투덜거렸다. 출발이 그랬으니 지금까지도 엄마 노릇엔 영 자신이 없고, 늘 사춘기 아들의 충고와 핀잔을 밥 먹듯이 먹으며 산다. 여러분도 상상해 보시라그러니 내가 이희아의 엄마를 만났을 때 얼마나 부끄럽고 자신이 한심스러웠을까를...

 돌아가신 희아의 아버지와 나는 자라난 고향이 같다. 어머니도 나의 본가가 있는 고성 출신이시다. 그래서 나는 희아 어머니와 첫 만남부터 무장해제 상태로 행복한 대화를 나눴었다. 그전엔 사실 희아를 이렇게 길러낸 엄마니, 당연히 아주 강하고 한편으론 지독한 사람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혼자 눈물겹게 장애아를 키운 홀어머니의 인내와 고난한 인생에 대한 시나리오를 마음 속으로 써대고 있었다. 그런데 이희아 엄마가 내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장애우를 상대로 눈물 나는 거위의 꿈 같은 글을 쓰지 말아 주세요. 우린 행복하고, 축복 받았고, 특별한 사람들 이예요. 그래서 난 장애아 이야기하면서 눈물 바닥 만드는 텔레비전 채널 보지 않아요.” 

 네 손가락과 무릎까지만 자란 두 다리를 가진 딸을 동네 노래자랑 무대에 세워서 신나게 끼를 발휘하라고 부추겨 주었던, 그리고 그 노래자랑에서 후라이팬을 상품으로 받았던 추억을 행복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는 정말 당당하고, 단단하고, 매력적인 엄마였다


우리는 행운을 가졌다

  2013
1130. 자카르타 한국 국제학교 나래홀에서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이희아 콘서트가 열렸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에서 특수 교육을 받는 민들레 반 친구와 엄마들이 이희아를 만나기 위해 먼저 공연장을 찾았다. 마술을 곁들인 첫 인사를 나누고, 무엇이든 질문을 하는 시간을 주었는데 아무도 선뜻 손을 들지 않는다. 그때 한 아이가 조그만 목소리로 이희아에게 물었다. “, 피아노를 쳤어요?” 희아는 손가락에 아무 느낌을 가질 수가 없어서,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의 감각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 그 아이에게 물었다. “ 너도 피아노 좋아해?” 아이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자 희아가 환히 웃으면서 말했다. “바구스 (Bagus) !!” 

  엄마들의 질문은 한결같다. 어떻게 장애를 가진 딸을 저렇게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길러냈냐는 것이다. 그리고 힘들지 않았냐고,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묻는다. 희아의 엄마는 예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눈빛으로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 장애아의 엄마는 정말로 행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변하지 않는 마음과 사랑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린 늘 행복할 수 있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장애아를 좀 더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하느님의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집안을 선택해서 장애아를 보내신다. 그러니 우리는 남들보다 큰 행운을 가졌다.” 

  그
리고 아이를 자꾸 바깥으로 데려나가 무대에 세워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 사회가 곧 무대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 서야 할 무대이기 때문이다.”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눈시울이 촉촉해진 한 엄마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녀가 오늘 저녁에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엄마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오늘부터 특별한 행운을 가진 엄마다.


유쾌한 공주병 환자의 감동 콘서트

  
이희아는 엄청난 수다쟁이다. 공연 전 대기실에서부터 공연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쉬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 음악, 종교, 정치, 통일에 이르기까지, 어떤 화제도 어떤 주장도 거리낌이 없다. 내가 짓궂게 물었다. “희아씨, 뇌 다쳐서 지능이 떨어진다는 거 사실이야? 무슨 말을 그렇게 잘 해요?” “엄마가 어릴 때 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어 줬어요. 그래서 내가 저절로 말을 잘하나 봐요.” 끄응…. 또 반성할 일만 생기는군.. 

  콘서트의 시작은 이희아에 대한 다큐 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엄마의 혹독한 피아노 훈련을 견뎌내면서 피아니스트로 성장해 가는 이희아의 일상이 담긴 영상이었다. 공연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목울대가 차오른다. 저 네 개의 손가락이 얼마나 아팠을까, 상처와 진물로 범벅이 되도록 얼마나 열심히 피아노를 쳤을까..? 나도 모르게 앞줄에 앉아있는 아들의 뒷통수를 힐끗 바라보았다.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데, 아들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하고 심각한지 훤히 짐작되었다.  
 
  콘서트는 모두에게 폭풍 감동과 유쾌함을 선사해 주었다. 이희아가 튤립 꽃이라고 소개한 네 개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를 힘차게 구를 때마다 아득하기만 한 전율과 감동이 전해졌다. 그녀가 특별히 좋아한다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과 베토벤의 열정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숨 막혔다. 즉흥 환상곡을 다 연주하기까지 꼬박 6년 동안 하루 10시간씩 연습을 했다니, 희아의 어머니가 이건 할 수 없을 거란 생각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도 완성될 수는 없다. 그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그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이 행복이다라고 했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고도 남을 것 같았다.  

  게다가 유머와 센스가 철철 넘치는 이희아가 머리에 커다란 꽃을 꽂고 꽃봉오리 예술단 버전의 자작곡 기쁨의 손가락을 부를 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일본 공연에선 최초로 민단과 조총련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공연을 했다는 그녀는 현재 남북통일 협력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단다. 신발을 벗고 피아노 의자에 폴짝 뛰어오른 뒤 벗어놓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작되는 그녀의 무대는, 한 곡 한 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나래홀이 떠나갈 듯한 박수 소리로 채워졌다. 환희의 송가, 캐논 변주곡, 강아지 왈츠, 아리랑 변주곡이 직접 연주곡을 소개하는 이희아의 멘트와 함께 쉴새 없이 연주되었다

  그리고 1부 중간엔 이희아와 엄마가 함께 하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호흡이 척척 들어맞는 두 모녀의 이야기 속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걸음을 떼는데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릴 뿐이었고 나는 그것을 기다려 주었다는 엄마의 인내와 사랑이 절로 읽혔다. 그리고 엄마는 제발 희아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도 함께 피력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목소리가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 합창단원의 목소리 같다고 했다는 말을 굳게 믿는 희아를 핀잔하며.. 근데 어쩌랴, 우리 모두에겐 그날 희아가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 합창단 목소리보다 더 아름답게 들렸다. 나는 눈을 감고 희아의 노래를 들었다. 아름다웠다…… 

▲ 선천성사지기형 1급 장애를 갖고서도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이희아(28) 양의 피아노 콘서트가 지난 30일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나래홀에서 열렸다. 노래하고 있는 이희아 양


  이희아는 아무도 고칠 수 없는 고질적인 공주병 환자다. 희아의 엄마가 직접 증언한 내용이다.공연 내내 혼자 중간사회를 보고, 연주하고, 혼자 노래하고, 재미난 이야기까지 곁들여 신나게 무대를 꾸민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자신을 빛나게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 희아의 공주병을 엄마는 절대 고쳐 줄 생각이 없다.

  ‘
우리들 몸 속에 스스로를 구원하는 선율이 숨어있다, .인니 문화연구원의 사공 경 원장은 이날 이희아를 위한 시를 낭독했다. 그리고 쇼팽의 즉흥 환상곡에 맞춘 김은지 현대무용가의 아름다운 무대와 깔끔하고 정갈한 성경미 극동방송 아나운서의 사회, 방송실에서 수고해 준 헤리티지의 김주현 씨까지, 모두가 이날의 콘서트가 반짝이며 빛나도록 힘껏 애를 써 주셨다. 무엇보다 이런 아름다운 공연을 기획하고 후원한 일요신문과 삼성전자 인도네시아 법인에도 감사할 일이다. 그 모든 분들의 수고 때문에 자카르타 교민들의 영혼이 감동과 사랑으로 한층 키를 키웠을 것이다.

  공연은 엄마가 그토록 뜯어말린 노래를, 이희아와 모든 관객들이 세 곡이나 함께 부르며 끝이 났다. 모두의 가슴을 따뜻하게 채운 풍요로운 저녁이었다

희아의 역할’, 그리고 나의 역할’ – 이희아 엄마의 이야기

  “
인간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다. 역할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희아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역할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그런 희아를 기다려 주는 역할이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은 세상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역할을 가진 사람이다. 그야말로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희아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각자가 이 세상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물어 본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대가 그대의 역할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 콘서트에서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피아니스트 이희아가 더 크고 원대한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자신의 소망대로 대한민국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해 나가고, 남북통일을 위해서 멋진 공연을 계속 펼쳐 나가리라 믿는다.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열 개의 손가락도 모두 감싸 쥘 만큼 거대한 네 개의 손가락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

▲ 선천성사지기형 1급 장애를 갖고서도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이희아(28) 양의 피아노 콘서트가 지난 30일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나래홀에서 열렸다. 이희아 양의 어머니.


▲ 선천성사지기형 1급 장애를 갖고서도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이희아(28) 양의 피아노 콘서트가 지난 30일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 나래홀에서 열렸다. 이희아 양과 출연진 및 스태프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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