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걱, 발리가 이런 곳이었어?'
3. 발리와 롬복 사이를 연결하는 빠당바이 항구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빠당바이 항구. 이곳은 발리와 롬복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곳인데, 90분마다 출항하는 여객선이 양쪽 섬의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 비교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덕 너머에 있는 스노클링을 하기 좋은 블루라군(Blue Lagoon) 비치도 매력적이다.
예전에는 발리에서 롬복으로 건너가려면 빠당바이까지 와서 5~6시간 걸리는 여객선을 타거나 국내선 비행편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최근에는 롬복여행의 핵심인 길리 트라왕안, 아이르, 메노 3섬을 왕복하는 스피드보트가 빠당바이에서 연결되니, 롬복섬 본토까지 여행하는 외국인 수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모터바이크 1대와 2인 승선에 112,000루피아, 한국 돈으로 11,200원 가량이다. 햇빛을 피해 그늘에 바짝 붙어서 여객선을 기다리는 모터바이크 대열에 합류하니 다시 한 번 설렌다. 처음 이 여객선을 타고 롬복으로 떠났을 때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발리에 기반을 두며 살고 있지만, 2007년 롬복의 길리 트라왕안 섬에서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이수한 것이 인도네시아와 첫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그로부터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앉을 자리도 변변치 않았던 여객선은 조금 좋아졌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롬복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어느새 머릿속은 2007년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6년 전, 꿈에도 잊지 못할 발리의 첫 경험
"잠시 후 이 비행기는 발리 덴파사르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현지시각은 오후 11시 55분, 현재 온도는 섭씨 30도, 습도는 80%입니다"
2007년 4월초. '섭씨 30도입니다' 하는 부분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좌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새어 나온다. 한여름 대낮 같은 온도와 습도에 도착도 하기 전부터 열대의 섬에 온 것을 실감한다. 대한항공 기내에 신혼여행객이 아닌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남자 혼자 커플들 사이에 껴서 일곱 시간을 비행하려니 여간 뻘쭘한 기분이 아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건물 밖으로 나오니 자정을 훌쩍 넘었는데도 북적북적하다. 피켓을 들고 손님을 기다리는 가이드들, 택시? 뜨란스뽓(transport)?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호객소리에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다. 습한 공기 속에는 제사에 쓰이는 향인지 동남아시아 특유의 향신료인지 모를 냄새가 섞여 있다. 여기는 어디인가, 인도 같다기엔 너무 세련되었고 유럽과 비교하기엔 우리와 더욱 비슷하다. 아직 발리만의 그 무엇을 느끼진 못하겠고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론리플래닛 여행가이드북을 참고삼아 호객을 뿌리치며 공항택시를 탔다. 미터기 없는 택시를 타면 십중팔구 바가지를 쓰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꾸따비치 앞의 최저가 배낭여행자 숙소인 코말라 인다(Komala Indah). 1박에 6천 원인데 아침식사가 포함되었다니 믿을 수 없는 가격이다. 보통 관문 도시의 저가숙소들은 한 방에 이층 침대를 여러 개 몰아넣은 도미토리(dormitory)식 다인실이 많은데, 여기는 방갈로 한 채를 1~2인용 방 두개로 나눠놓은 구조라 상당히 쾌적하다.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 숙소의 대부분이 이런 스타일이라고 한다. 방문 앞에는 작은 발코니에 의자와 탁자, 수영복을 자주 말리는 서퍼(surfer)들을 배려한 건조대가 놓여 있었다.
숙소 직원이 6천 원짜리 방을 보여주는데 기가 막힌다. 벽은 대나무로 짜여 외부공기를 완벽히 차단할 수 없는 구조였고, 화장실은 주저앉아 변을 보고는 바가지로 물을 부어내리게 되어 있었다. 저가 숙소라 온수는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직원이 8천 원짜리 방은 훨씬 크고 벽도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에어컨이 달린 방은 만원부터 시작한다고 덧붙인다.
‘그래도 인도의 저가 숙소보다는 훨씬 낫잖아?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마치려면 많은 비용이 들 테니 무조건 아껴야 해.’ 하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6천 원짜리 방에 묵기로 했다. 짐을 내려놓으니 금세 피곤과 허기가 찾아와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 태국은 세븐일레븐이 대중적인 편의점인데 발리에서는 서클케이가 제일 흔하다고 한다.
처음 보는 발리 사람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첫인상은 피부가 꽤나 검다는 느낌이었다. 공항에서 숙소, 편의점까지 많은 사람을 접하진 못했지만 대체로 잘 웃고 친절해서 다행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여행지라도 현지인이 불친절하면 머무는 내내 유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골목 사이로 모터바이크(스쿠터)가 쌩쌩 지나간다. “모떠르바잌, 모떠르바잌(motorbike)” 하고 호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오젝(ojek)이라고 불리는 모터바이크 택시로 길이 자주 막히는 발리에서 이동시간을 아낄 수 있는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편의점에서 햄버거 하나를 사서 데워 먹었다. 숙소가 위치한 브네사리(Benesari) 거리를 되짚어 돌아오는데 사람도 불빛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워낙에 안전하다는 발리이지만 어두운 길 수백 미터를 새벽 한 시 넘어 혼자 걸으려니 으스스하다. 갑자기 전방에 모터바이크 한 대가 나타나더니 나를 가로막고 선다. 마침 주위에 아무도 없어 은근히 긴장되었는데, 헬멧도 쓰지 않은 아줌마 한 명이 씨익 웃는 걸 보니 도둑이나 강도는 아니지 싶어 안심이 된다. '그런데, 이 아줌마 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거지?'
느낌이 이상해서 옆으로 지나가려는데 모터바이크에서 내린 아줌마가 갑자기 내 허리춤을 잡더니 바지를 화악 벗기는 것이 아닌가? 전혀 예상을 못했기에 반바지는 순식간에 무릎까지 내려갔고, 속옷이 드러나자 나도 모르게 비명이 쏟아졌다.
“으… 으아아!”
바지를 엉거주춤 수습하고 미친 듯이 숙소까지 줄행랑을 쳤는데, 방문 앞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아직도 두 손으로 바지 끝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슬리퍼 차림으로 뛰어 오면서 어딘가 잘못 딛었는지 발바닥도 욱신거린다.
“발리가 이런 곳이었어? 태국이나 필리핀보다 훨씬 건전하다고 해서 온 건데…….”
그것이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범벅이 된, 지금도 잊히지 않는 발리의 첫 경험이었다.
* 김정훈 : 자유로운 꿈을 꾸는 여행가.
IT회사에 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여행이 곧 삶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시작한 후 30개국 140개 이상의 도시를 방문했다. 여행 중 영혼을 빼앗겼던 남미의 콜롬비아에서 ‘태양여관(Posada del SOL)’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열기도 했다. 본명보다 스페인어 이름인 ‘다니(twitter @afterdan)’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국적 항공기 가루다항공의 계열사인 가루다 홀리데이즈의 인도네시아 브랜치 매니저를 역임했다. 지금은 또 한 번 사랑에 빠진 여행지,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살고 있다. 언젠가 인도네시아의 큰 섬들을 하나하나 모두 여행해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