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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의 Travel Indonesia 5

기사입력 2014.03.10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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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리섬에서 선탠을 즐기는 배낭여행자들. (사진=김정훈 여행가)


5. 여행자들의 진정한 낙원… 길리섬 3총사, 길리 트라왕안

아무 생각없이 론리플래닛(Lonely Planet) 가이드북의 추천 숙소를 선택한 대가였다. 승기기(Senggigi) 해변에서 묵은 첫밤엔 단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침대에 눕기만 하면 온 몸을 물리게 되니 살충제를 뿌리고, 찬물로 샤워하고, 연고를 바르는 일을 밤새도록 반복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기용 스프레이는 베드버그 퇴치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베드버그(bedbug, 빈대)는 보통 침대 매트리스 밑면에 붙어 있다가 밤에 활동하는데, 햇빛을 싫어하고 알콜에 약하다고 한다. 베드버그에게 물린 자국은 일정한 간격으로 직선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베드버그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숙소는 여행자들이 기피하게 되는데, 아무리 청결하게 유지해도 여행자의 몸에서 묻어오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숙소 입장에서는 골치를 썩을 수밖에 없다. 주로 배낭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최저가숙소일수록 베드버그가 출현할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침대 매트리스 위는 엄두도 못 내고 타일 위는 괜찮겠지 싶어 바닥에 몸을 뉘었는데 소용 없었다. 베드버그들이 간만에 포식을 하려는지 계속 쫓아와서 물어댄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방문을 열고 나와 발코니에 누웠더니 밤공기와 밑에서 올라오는 냉기 때문에 마치 고문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공포의 베드버그(Bedbug) 때문에 밤을 새다

'해 뜨자마자 체크아웃하고 다른 숙소로 옮겨야지!‘ 

비몽사몽하고 있는 와중에 천천히 날이 밝아온다. 청소하려고 일어났던 숙소 직원이 발코니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베드버그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고 말 하니까 매트리스를 한 번 뒤집어 보고는 방을 바꿔주겠다고 한다. 나는 그럴 필요 없으니 빨리 체크아웃이나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마데 홈스테이는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인 트립어드바이저(Trip Advisor)에서 베드버그 출현으로 아주 유명한 숙소였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의 저자는 아마 이 숙소에 묵어보지도 않고 추천 숙소에 올린 것이 틀림없으리라.

도망치듯 모터바이크를 타고 나섰는데, 어제 종일 운전하고 롬복으로 넘어오느라 피곤한 차에 베드버그에게 잔뜩 헌혈하느라 잠까지 못 잤으니 죽을 맛이다. 길리섬으로 바로 들어가는 건 무리가 있겠다 싶어 다른 숙소에 체크인하고 가진 옷들을 다 빨아 햇빛에 말렸다. 설마 내 몸에서 묻어 온 베드버그 때문에 다음에 이 방에 묵을 사람이 고생하는 건 아니겠지?

숙소를 옮기고 승기기 여행자거리를 찬찬히 돌아보니, 6년 전에 비하면 구역이 2~3배로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승기기 부근은 발리에 비하면 아직 초라하지만 롬복섬 본토에서는 가장 번화한 곳으로, 해변을 끼고 고급리조트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롬복섬의 최고봉인 린자니(Rinjani)산을 오르려는 여행자들도 관문 도시인 승기기로 모여드는데, 해발 3,726미터의 린자니산은 정상의 분화구 속 칼데라 호수 안에 또 하나의 분화구가 있는 이중 구조의 화산으로 빼어난 절경 때문에 많은 산악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길리 트라왕안의 거리. 내연기관이 금지되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사진=김정훈 여행가)


승기기에서 해안선을 따라 주행하다 보면 감탄사를 내게 하는 경치를 품은 비교적 덜 개발된 해변이 줄 지어 나온다. 승기기 해변 위쪽은 롬복섬에서 필히 방문해야 할 곳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은 평일에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발리의 꾸따비치처럼 한 시야 안에 수백 명이 보이는 곳에 비교하면 롬복의 해변들은 아직 야생의 모습에 가깝다고 하겠다. 문제는 이곳도 해안선을 따라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아름다움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적 없던 조용한 해변에 리조트가 들어서면, 누구라도 방문할 수 있었던 해변이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private beach)가 되어 투숙객 외에는 볼 수도 즐길 수도 없는 곳이 되게 마련이니까. 

승기기에서 북동쪽으로 약 30km 정도를 달리다 보면 왼편에 그림 같이 줄지어 선 세 개의 섬이 나란히 나타난다. 이들이 바로 여행자들의 낙원으로 일컬어지는 길리 트라왕안(Gili Trawangan), 길리 메노(Gili Meno), 길리 아이르(Gili Air) 세쌍둥이 섬이다. 영국 BBC의 베스트 시크릿 아일랜드(Best Secret Islands)와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의 2011년 세계 10대 여행지로 선정되어 세계적인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에게 있어 길리섬은 6년 전 인도네시아와 첫 인연을 맺게 해준 곳이며, 여기 머무는 동안 스쿠버다이버 마스터(Divemaster) 자격증을 취득해서 더욱 각별한 곳이기도 하다.

바다의 종합선물 세트, 길리섬 3총사

바닥의 모래알까지 비쳐지는 한 없이 투명한 물빛과 평균 25m 이상의 수중시야가 나오는 맑은 바다, 다양한 산호초와 열대어종의 서식지, 거북이와 상어를 볼 수 있기로 유명한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 그리고 해변을 끼고 늘어선 레스토랑과 카페들. 지평선 위에는 섬 세 개가 나란히 떠 있고 저 멀리 배경에는 롬복섬 본토의 린자니산이 보인다. 매연도 공해도 없는 진정한 여행자들의 천국.

최근에야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사실은 오래 전부터 론리플래닛에서 추천했던 인도네시아 여행의 최종목적지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곳이 롬복의 보석이라 불리는 길리 3섬이다. 길리(Gili)란 롬복의 고유언어인 사삭(Sasak)족 말로 ‘작은 섬’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흔히 3섬을 묶어 ‘길리 섬들(The Gili Islands)’로 부른다.

한국의 제주도는 흔히 여자, 돌, 바람의 3가지가 많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길리섬은 반대로 개, 내연기관, 경찰의 3가지가 없기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사람들이 섬에 방문하는 손님들의 불편을 고려해 개를 키우지 않기로 했고, 내연기관이 금지 되어있어 모든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야만 한다. 섬의 주민들은 서로 밥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사이들이라 범죄가 거의 없으니 섬에 상주하는 경찰 또한 없다. 대신에 큰 문제가 생기면 마을회의를 열거나 롬복 본토에서 경찰을 불러 해결한다고 하니 치안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길리섬은 개가 없는 대신에 고양이들의 천국이 되었고, 내연기관이 없으니 공기가 더할 수 없이 맑다. 여행자들은 섬에 머무는 동안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대신 직접 몸을 움직이고 바다를 즐기게 되니 건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장점이다.

▲ 길리섬에서 즐기는 스노클링. (사진=김정훈 여행가)

▲ 니모를 찾아서 길리섬으로. (사진=김정훈 여행가)


길리섬은 원래 접근성이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발리에서 롬복 본토로 넘어 온 다음 승기기 해변으로 이동, 그리고 승기기에서 다시 방살(Bangsal)이라는 항구까지 이동해서 30명이 타야만 출발하는 퍼블릭보트를 이용하는 것이 유일한 교통편이었기 때문이다. 항구 도시인 방살에는 흔히 방살 마피아(Bangsal Mafia)라고 불리는 건달들이 보트를 기다리는 여행자들에게 온갖 거짓말로 사기를 치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처음으로 길리섬을 방문했던 2007년에 나는 어찌나 방살 마피아들에게 시달렸던지, 나는 인도네시아가 어떤 곳이냐고 묻는 주변사람들에게 "여긴 사람 빼고 다 좋아. 사람 빼고 천국이야!" 라고 대답하곤 했다.

이번에는 아주 오랜만에 방살항구를 거쳐 가는 일정이라 바짝 긴장이 된다. 방살항구의 주차장에 모터바이크를 맡기고 퍼블릭보트를 이용해서 길리섬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인도의 끈질긴 삐끼들을 연상시키던 방살 마피아의 호객 소리가 벌써부터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내가 짐을 들어줄게! 이리 줘!”

“길리섬에 가면 모든 게 다 비싸! 그러니 여기서 모기향을 사 가는 게 좋을 거야! 만원만 받을게. 엄청 싸지?”

“목마르지? 여기 물이 있어! 싸게 줄께.”

 퍼블릭보트를 기다리는 30분에서 한 시간 내내 사방팔방에서 이런 괴롭힘을 당하면 진절머리가 나고 결국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게 된다.

“내가 안 산다고 했지! 제발 가만 좀 놔둬!(I said No! Please leave me alone!)”

방살항구를 여러 번 거쳐 가면서 생겼던 악몽 같은 기억들에 몸서리가 쳐진다. 모터바이크를 하루에 1만 루피아(1천원) 내는 조건으로 맡긴 후, 배낭을 메고 심호흡을 하며 항구 쪽으로 천천히 들어섰는데 웬걸?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네?’

퍼블릭보트를 기다리는 내내 나를 귀찮게 만들 방살 마피아가 보이지 않으니 김이 빠진다. 잔뜩 긴장하고 왔는데 어떻게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을까?

나중에 길리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발리에서 출발하는 직통 스피드보트를 타고 길리섬에 도착하기 때문에 방살 마피아들이 항구에서 호객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매년 12~2월 사이의 우기에는 가끔씩 파도가 높아 스피드보트 운행이 금지되는데, 이때 길리섬을 오가려면 방살에서 퍼블릭보트를 타야만 하므로 마피아가 다시 활개를 친다고 한다. 스피드보트라는 새로운 교통 수단이 도입된 덕분에 길리섬을 여행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현지인 삐끼들의 영업전략 또한 바뀌게 된 셈이다.

1500원 정도의 뱃삯을 내고 이십분쯤 기다리니 방송에서 퍼블릭보트 출발을 알린다. 30명 정원이지만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들고 타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배가 가라앉을까봐 걱정해야 하는 30분간의 여정. 출장으로 잠깐씩 들린 것을 제외하면 6년 만에 한 사람의 여행자로서 길리 트라왕안을 다시 방문하는 셈이다. 퍼블릭보트가 뒤뚱거리며 길리 아이르와 메노를 지나 트라왕안 항구에 멈춰 섰다. 배낭을 메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자 비로소 섬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난다.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는데 호객꾼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이 남자를 한 번 따라가 볼까...

“길리 트라왕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렴한 방을 원해요? 내가 좀 알고 있는데…….”

▲ 롬복 본토에서 길리섬으로 들어가는 퍼블릭 보트. (사진=김정훈 여행가)


* 김정훈 :
자유로운 꿈을 꾸는 여행가. IT회사에 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여행이 곧 삶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시작한 후 30개국 140개 이상의 도시를 방문했다. 여행 중 영혼을 빼앗겼던 남미의 콜롬비아에서 ‘태양여관(Posada del SOL)’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열기도 했다. 본명보다 스페인어 이름인 ‘다니(twitter @afterdan)’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국적 항공기 가루다항공의 계열사인 가루다 홀리데이즈의 인도네시아 브랜치 매니저를 역임했다. 지금은 또 한 번 사랑에 빠진 여행지,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살고 있다. 언젠가 인도네시아의 큰 섬들을 하나하나 모두 여행해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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