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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의 Travel Indonesia 6

기사입력 2014.04.0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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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호를 먹고 있는 거북이. (사진 = 김정훈 여행가)


6. 길리섬의 수호천사들을 만나다

#1. 스쿠버다이버들의 요람, 길리 트라왕안

호객꾼 존돈이 데려간 숙소는 놀랍게도 아침식사 포함 10만 루피아(약 1만원)를 받는다고 했다. 길리 트라왕안섬의 해변가 쪽은 대체로 물가가 높은 편인데 새로 지어지고 있는 섬 안쪽의 홈스테이드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객들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샤워는 틀림없이 소금물이겠지. 이런 가격이라면…….'

아니나 다를까 작은 방에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치니 머리카락이 빳빳이 곤두선다. 이집트 다합처럼 길리섬도 민물 공급이 힘들어 소금기 있는 지하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길리섬 3총사가 배낭여행자들의 섬으로 남아있었던 건 접근성과 더불어 이런 불편함도 한몫 했다. 몇 년 전 지인에게 신혼여행지로 길리 섬을 추천했는데, 4성급 호텔에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가서 민물샤워를 해야만 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었다. 요즘은 롬복 본토에서 큰 탱크로 민물을 공수해오거나 바닷물 정수장치를 이용해서 지하수와 섞어 쓰는 숙소도 있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소금기를 완벽히 제거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길리 트라왕안은 흔히 파티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세 섬의 번화한 정도는 길리 트라왕안, 길리 아이르, 길리 메노의 순인데 길리 트라왕안은 항상 북적북적하고 길리 메노는 사람이 거의 없는 조용한 곳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메노섬으로 이동하려는 여행자들을 붙잡기 위해 트라왕안 섬 사람들이 "메노섬은 아무 것도 없고 모기만 창궐하는 곳인데 뭐 하러 가냐?" 하는 소문을 만들었다. 이 이야기가 진실인 양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에 실리면서 여행자들이 오랫동안 기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메노섬은 3섬 중에 가장 자연체의 모습으로 남았지만, 메노섬 사람들이 트라왕안섬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이로써 길리 3섬은 뚜렷한 개성을 지니게 되었는데, 북적북적한 에너지를 느끼고 싶고 파티를 좋아하는 사람은 길리 트라왕안, 조금 덜 붐비는 곳이 좋으면 길리 아이르, 사람 많은 게 싫으면 길리 메노로 이동하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있다. 길리 트라왕안은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선호하고 길리 아이르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

▲ 다이너마이트 피싱과 엘니뇨 현상으로 죽은 산호들. (사진 = 김정훈 여행가)


6년만에 길리 트라왕안을 자유로이 거닐며 추억의 장소들을 하나씩 찾아가 본다. 2007년에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배웠던 블루말린(Blue Marlin) 다이빙스쿨 앞으로 갔더니 예전보다 더 사람이 많아졌고 구조도 바뀐 것 같아 왠지 낯설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그 시절 매일같이 함께 다이빙하던 동료들을 보기는 힘들 것이라 망설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아는 얼굴이네. 길리 트라왕안으로 돌아왔군요! (I know you. You came back to Gili-T!)"

놀랍게도 블루말린의 종업원 중에 한 명이 내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잠시 후엔 오히려 멋쩍어 하던 내가 쉬지 않고 질문을 쏟아냈다.

"다들 잘 지내죠? 다이브마스터였던 우스만(Usman)은? 카운터에 있던 헤라(Hera)는? 그리고 또 누가 있더라……."

길리섬은 다이빙 교육을 받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현재 길리 3섬에 총 21개의 다이빙스쿨이 있지만 모두가 철저한 교육과정으로 안전수칙을 지키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다이빙포인트로만 보면 발리가 더 좋은 편이지만, 특유의 열대섬 분위기와 배로 5~10분 내에 다이빙포인트로 갈 수 있는 접근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리섬에서 다이빙 교육 받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그때 같이 다이빙을 하던 현지인 마스터 중에서는 인스트럭터(강사)가 된 사람도 있고, 더이상 다이빙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다른 다이빙센터로 옮기거나, 혹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일하기도 해서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하긴 6년 만이니…….'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나의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지도했던 봅(Bob)과 그의 여자친구 델핀(Delphine)을 만나러 자리를 옮긴다. 내가 길리를 떠나 있는 동안 예쁜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특별히 한국에서 공수해 온 유아용 미니풀장을 선물로 준비해왔다. 상자는 무겁지만 마음도 걸음도 한 없이 가볍다.

#2. 길리섬의 수호천사들과 바이오락(Biorock)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하기를 원하는 외국인들의 각별한 노력은 길리섬을 더욱 특별한 곳으로 만들었다. 프랑스인 다이빙 인스트럭터인 델핀(Delphine Robbe)이 이끄는 환경단체 길리 에코 트러스트(Gili Eco Trust, http://giliecotrust.com)는 바이오락 프로젝트, 길리섬의 고양이와 말(horse) 클리닉, 쓰레기 처리, 거북이 보호센터 운영 등으로 길리섬의 수호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길리섬의 수중은 산호와 물고기 등 다양한 해양생물을 볼 수 있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수중폭파로 물고기를 잡는 다이너마이트 피싱(Dynamite fishing)과 수온이 상승하는 엘니뇨 현상 때문에 많은 산호가 파괴되었다. 산호는 물고기들의 식량이며 강한 조류를 막아주는 보금자리로 해양생태계의 기본이 되기에, 산호가 없는 곳에서는 물고기 또한 볼 수 없게 된다. 바닷물고기의 약 70%가 산호초를 거주지로 삼기 때문이다.

2004년, 긴 세계여행 끝에 길리섬을 찾은 델핀은 파괴된 수중환경에 안타까움을 느껴 토머스 박사(Dr. Thomas Goreau)와 볼프 교수(Professor Wolf Hilbertz)가 발명한 바이오락(Biorock)을 길리섬의 수중환경에 적용하기로 결심했다. 바이오락은 산호의 성장을 돕는 일종의 인큐베이터로, 철제구조물을 바다 속에 집어넣고 2~6V의 약한 전류를 흘려보내면 아라고나이트(aragonite) 광물이 철에 달라붙으면서 산호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이로써 자연 상태보다 2배에서 6배까지 산호의 성장이 빨라지면서 수중환경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는 경이로운 기술이다.

▲ 바이오락을 둘러보는 다이빙 체험도 할 수 있다. (사진 = 김정훈 여행가)


현재 길리섬에는 70개 이상의 바이오락이 설치되어 총 2km에 가까운 산호군을 복원했다고 한다. 2007년 길리섬에서 바이오락(Biorock)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는 물속에 웬 정글짐 같은 구조물들과 산호가 매달려 있는가 싶었다. 당시에는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는지 수중환경을 얼마나 복원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바이오락 근처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이 바이오락과 그 위에 만개한 산호가 없었다면 거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해보면 쉽게 실감할 수 있다.

길리섬의 다이빙센터와 레스토랑들이 각각의 바이오락을 위한 전기배터리를 제공하고, 길리 에코 트러스트에서는 길리섬에서 처음으로 다이빙 하는 사람들의 의무적인 기금과 스폰서의 기부금을 모아 새로운 바이오락을 만들며, 정기적인 워크샵을 열어 바이오락 기술을 세계 각지로 전파하는데 힘쓰고 있다. CNN 등에서도 바이오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애정 어린 노력으로 많은 것이 회복되고 변화할 수 있다는 건, 놀랍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왜 길리섬에서 바이오락 프로젝트를 시작했냐는 질문에 델핀은 이렇게 말한다. "다이빙 강사를 하면서 충분한 돈을 벌었으니, 내가 받은 것들을 길리에 되돌려주고 싶었다.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어서이다."

선물도 전해줄 겸 미리 약속한대로 델핀과 봅의 집을 방문하니 두 사람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델핀은 바이오락과 환경단체 일,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기 때문에 매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엉클 다니(Uncle Danny)가 왔네! 에반(Evan), 다니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 물고기들의 보금자리가 된 바이오락. (사진 = 김정훈 여행가)


델핀의 남자친구인 영국인 봅(Bob)은 내게 다이빙을 가르칠 때의 카리스마는 어디로 갔는지 살이 오를 대로 오른 가정적인 남자로 변신해 있었다. 아주 오랜만인데도 나를 잘 기억했는데, 2007년 다이브마스터 수업 때의 내 모습은 ‘실수가 잦지만 태도가 마음에 드는 학생’이었다고 했다. 단지 내가 길리섬을 떠났을 때 남미 어느 나라로 갔는지는 헛갈려 했지만.

“코스타리카였던가? 아 맞아, 콜롬비아랬지!”

빈땅(Bintang) 맥주가 하나둘씩 비워지며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봅은 세계 최고의 다이빙포인트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코모도(Komodo)섬과 라자암팟(Raja Ampat)으로 떠나는 리버보드(liveaboard) 다이빙보트의 디렉터로 일하면서 몇 년간 길리섬을 떠나 있었다고 한다. 이제 다이빙 관련 일은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기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다이빙 보트 일은 포기했고 인스트럭터 일은 충분히 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더 고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봅, 다이빙 인스트럭터 일은 힘들지 않았어? 감기에 걸렸을 때도 학생을 가르쳐야 해서 곤란해 했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감기에 걸리면 코를 막은 채 귀를 뚫는 압력평형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잠수할수록 귀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강사가 아프다고 수업을 빠질 수는 없으니 무조건 고통을 참으며 학생의 일정에 맞출 수밖에 없다.

봅이 답한다. “아, 그럴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난 다이빙 가르치는 일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해.”

다이빙 인스트럭터는 오랫동안 내가 꿈꿔온 것이기도 했다. 다이브마스터에서 한 단계만 올라가면 강사가 될 수 있지만 그 상태로 멈춘 지 벌써 6년이란 흘렀다.

봅에게 슬며시 물었다. “지금이라도 내가 다이빙 인스트럭터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해? 너무 나이가 많지 않을까?”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미련을 누군가 끊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섞여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봅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무슨 소리야, 나이 절대 많지 않아. 그리고 한국어 하는 강사는 길리에 없잖아? 영어도 가능하니 인스트럭터 따고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직업을 구할 수 있을걸? 나 같이 늙은 퇴물강사에게는 자리가 없을지 몰라도 말야.”

마지막은 역시 그다운 농담으로 마무리 짓는다. 확실히 누군가를 다이버로 만들어준다는 것도, 내 모국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것도 도전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일이다. 쐐기를 박아줄 것으로 은근히 기대했는데, 마음먹은 대로 인생을 즐기라는 권유를 들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래, 언젠가는…….’

일이년 안에 다시 길리로 돌아와서 꼭 스쿠버다이빙 인스트럭터가 되리라. 봅은 확실히 동기를 부여했다고 느낀 듯, 씩 웃어보였다. 델핀이 아기를 재우고 합석하자 화제가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넘어갔다. 나는 델핀의 바이오락 프로젝트에 대한 노력과 결과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보냈다.

“길리섬에서 처음으로 다이빙하는 사람들은 5달러씩 의무적으로 내야하는 것 맞지? 그 기금은 길리 에코 트러스트로 들어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온다면 기금도 많이 모여서 바이오락도 더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난 길리섬이 더욱 더 알려졌으면 좋겠어.”

“음, 좋은 생각이지만 거기엔 모순이 있어. 사람이 많이 올수록 환경은 더욱 빨리 파괴되니까.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고 해도 홍보하고 사람들이 많이 온다면, 그 자연이 훼손되는 건 시간 문제일거야. 그러면 복구하는데 또 많은 노력이 필요할거고.”

환경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큰 차이가 있다는 느낌에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하면 이들처럼 살아오면서 자연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돌려줄 수 있을까? 각자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일단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이오락에 대해 알리는 글을 기회가 되는대로 써서 알린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해 고민하게 되겠지.

“그건 그렇고, 오늘밤엔 아이리시바(Irish Bar)에서 다시 만나면 어때? 축구경기 중계가 있을 거야.”

“간만에 재미있겠는데.” 나는 승낙의 의미로 주먹을 내 밀었고, 곧이어 봅의 주먹이 맞닿았다. 

▲ 길리섬의 수중환경. (사진 = 김정훈 여행가)



 * 김정훈 : 자유로운 꿈을 꾸는 여행가. IT회사에 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여행이 곧 삶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시작한 후 30개국 140개 이상의 도시를 방문했다. 여행 중 영혼을 빼앗겼던 남미의 콜롬비아에서 ‘태양여관(Posada del SOL)’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열기도 했다. 본명보다 스페인어 이름인 ‘다니(twitter @afterdan)’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 국적 항공기 가루다항공의 계열사인 가루다 홀리데이즈의 인도네시아 브랜치 매니저를 역임했다. 지금은 또 한 번 사랑에 빠진 여행지,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살고 있다. 언젠가 인도네시아의 큰 섬들을 하나하나 모두 여행해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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