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초록은 하나의 풍경이다:보고르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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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하나의 풍경이다:보고르식물원

기사입력 2014.05.0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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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니문화연구원의 보고르 문화탐방이 지난 4월 23일 열렸다. 보고르에 위치한 대통령궁 앞 계단에서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인니문화연구원 251회 문화탐방기


김현미( 연구원 팀장. 한국문인협회인도네시아지부회원)

  초록의 축제가 풍성한 곳. 나무 끝자락에서 금방이라도 초록의 수액이 후두두 떨어질 것만 같은 푸르름은 나로 하여금 그 그늘 아래 내 안의 습기를 내어 놓고 말리고 싶게 한다. 짙푸르다 못해 농염한 그 초록을 보노라면, 내 안의 가여운 내가 눈 녹듯 작아지고, 어린 날의 여렸던 연둣빛도 힘이 입혀져 짙푸름의 박동으로 내게 대답한다.

  새벽안개 자욱한 신비한 시간 숲 속에서 나는 자연과 한 호흡으로 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다. 낮은 풀의 미세한 움직임조차도 전율로 전해져 왔던 그 순간. 의식의 문을 걷어내고 무의식의 수면 밑으로 들어 가 본 기억이다. 나는 '나'라는 우주를 경험 했었던 것 같다. 그 때의 숲의 빛깔과 나무의 향기, 잎새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햇볕이 칼날같이 내려 꽂이는 시간. 햇빛의 물결이 나무그림자와 교차를 이루며 만들어 낸 그림을 보았다.  때때로 답을 알 수 없을 때, 분주함 속에서도 일 진행이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을 때 나는 그 초록의 동굴 안에서 내 안의 진실한 욕망과 만나고 대화하며 나다운 답을 찾았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가 가득한 숲에서 내 안의 울분을 토해내며 빗소리를 방패 삼아 꺼이 꺼이 소리 내어 울기도 했었다. 이토록 다양한 초록의 스팩트럼 안에서 나는 마음 한 자락을 우두둑 무너뜨리면, 가지치기를 끝낸 나무가 되어 있었다. 초록의 숲이 좋아 이렇게 물들여져 가고 결국은 스스로 초록이 되어 가는 나를 본다. 시인의 구절처럼 나는 초록 곁에서 초록을 그리워하는 일을 한다. 오늘도 초록이 만드는 그 그림자. 바람과 햇빛이 만드는 흉내 낼 수 없는 변주곡을 들으러 보고르 식물원으로 갔다. 

  보고르 식물원은 15세기 총독주변을 영국정원사가 설계하여 만들기 시작했다, 1817년 47헥타르규모의 대지로 개발되면서 19세기에 이르러 서는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열대지방의 식물표본 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17000종 이상의 식물을 갖춘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이다.

  ‘비의 도시' 보고르. '걱정이 없는'이라는 뜻의 'buitenzorg'가 어원인 보고르. 영국통치 당시 인도네시아의 수도였으며 자바의 첫 흰두왕국인 보고르. 이번 문화탐방은 35명의 인원으로 사공경 한*인니 문화원 원장님과 박선이 수석문화탐방팀장의 안내로 가는 차 안에서 보고르에 관한 전반적인 역사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함께 들었다. 탐방 팀을 위해 준비해온 여러 가지 간식들을 먹으며 우리는 보고르 식물원에 도착했다. 보고르 식물원은 4개의 산책로로 되어있다. 

1. 첫 번째 산책로 (가장 오랜 수령의 리찌나무가 있는 산책로)

  정문 양쪽 기둥에 가네샤 석상을 두고 영국 부총독 라펠스의 부인 올리비아의 추모비가 있는 산책로가 펼쳐져 있다. 립스틱의 재료가 되는 붉은 잎저를 가진 lipstick palm, 큰 소시지 처럼 생긴 열매를 가진 키젤리나 아프리카나의 열매는 대부분 코끼리 사료로 사용 된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말로만 듣던 세계에서 가장 큰 꽃 사체화(titan arum: 백합과 식물)를 보고 싶었으나 3~4년 만에 죽어서 보지 못했다. 현재는 다시 생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꽃에서 죽은 시체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여졌다.

  조금 지나면 프랑스풍의 아름다운 정원과 '신의 손'이라는 청동상이 있는데 이 다섯 손가락은 인도네시아의 다섯 개의 섬 혹은 5대 국가 철학 (Belief in God, Humanity,  National Unity, Democracy, Social Justice)을 의미 한다.

  정원을 즐기며 걷다 보면 보고르 식물원에서 가장 오래된 리찌 나무를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옛날에는 현재의 3배의 굵기까지 되었었다고 하는데 수령이 더해가며 기둥 아래 부분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가며 몸체가 줄어드는 현상으로 보여지지만, 이치적으로 생각하면 대사소모량을 줄여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생명체의 순리로 여겨진다. 리찌 나무는 젊음의 화창한 봄날과 쨍쨍한 여름을 슬기롭게 보내어 다른 나무보다 오래 견디며 살아온 그윽한 향기이며 아름다운 자태 그 자체이다. 의식의 확장이 필요한 어려운 시절이 오게 된다면 이 리찌 나무 아래에서 현자들의 말을 떠올리며 세상을 헤쳐나갈 묘안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2. 두 번째 산책로(다양한 수생식물)

  연못이 많은 두 번째 산책로에는 연못의 수생식물인 파피루스와 영국인이 아마존강에서 처음 발견하여 영국여왕 이름을 따서 붙인 '빅토리아 아마존 연꽃'이 있다. 이 가시연꽃은 동남아에서 제일 크다. 이 연꽃은 그 크기도 엄청나지만 실제 물속의 잎 뒷면이 아주 단단하여 5kg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연 잎의 형태가 우리나라 소반 형태로 단아한 형태미가 있다. 흰 꽃이 2~3일 핀 후에는 분홍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밤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밤에 꽃이 열리는 순간을 상상하니 생각만으로도 고혹적인 미에 취하는 것 같다.

  벨기에 공주가 신혼여행으로 식물원 방문 한 것을 기념하여 벨기에 국기 색상을 상징하는 칸나꽃과 아가티스 나무가 식재 된 산책로도 있었다. 보고르 식물원을 돌다 보면 인도네시아의 아픈 역사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방의 통치자를 위해 지어졌을 많은 정원이나 궁들은 아름다움은 있지만 큰 감흥이 없다. 원래의 야생의 수목들이 뿜어내는 거대한 초록빛의 에너지가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한 탓이다. 

  판다누스 나무 종들은 지상의 나무줄기에서 기둥뿌리가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 공기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나는 이곳 보르르 식물원에서 공기뿌리, 요정 수술 꽃(임의로 지었음)들을 보고 아마 아바타의 영화제작자가 이 보고르 식물원에서 많은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짐작 해 본다. 아바타 영화를 보면서 완전한 몰입을 가능하게 했던 생생하고 기묘한 자연의 묘사. 아열대의 화려하고도 아름다웠던 나무와 꽃과 덩굴들은 상상이 아니었다. 미지의 정글과 오색찬란한 식물들이 가득 했던 숲이 상상의 식물이라 여겼음에도 그 아름다운 자태에 나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내내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는데, 그 아름다운 요정 수술 꽃이 여기 있다니! 그 원시의 자연이 그대로 여기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3. 세 번째 산책로(용설란 류가 다양한 멕시코정원)

  멕시코정원이 있는 산책로에는 라틴아메리카의 건조한 지역이 원산지인 용설란 류가 많다. 100년만에 꽃을 피우고 죽는다는 얼룩용설란, 데킬라의 재료로 사용되는 선인장, 사이잘 삼, 애니깽의 원료가 되는 선인장 등은 그 크기와 다양함에 특별함을 더했다. 노란 양초가 주렁주렁 달린 candle tree, 연인들이 건너면 헤어진다는 붉은색의 구름다리, 커피나무, 카카오나무 등도 이 산책길에서 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288종의 야자나무가 있는 이 곳 산책로. 그들의 시들어진 잎 한줄기 조차 귀중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이 식물원은 지겨울 일이 전혀 없는 곳이다. 철철이 피고 지는 많은 것 들, 올 때 마다 달라진다는 나무들, 찰나의 순간에 피었다가 지는 많은 꽃들 때문에 말이다.

4. 네 번째 산책로(바오밥나무)

  보고르 궁전의 앞부분에 있는 네 번째 산책로에는 바오밥 나무가 다소 초라히 서 있다. 건기의 환경이 더 적합한 나무라 이쪽의 환경과 맞지 않아 형태에서도 우리가 사진으로 보았었던 형태는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알라가 세상을 창조한 후 너무 피곤해서 이 나무를 거꾸로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네 번째 산책로에서 우리는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커플 나무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뿌리가 여러 개의 벽을 이룰 만큼 큰 형태에서 든든함을 보았다. 그래서 사랑을 지켜 내리라는 믿음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우리 팀원들은 걷기도 하고 미니버스를 나누어 타기도 하면서 이동했다. 다소 더운 날씨였지만 식물들을 관찰하기엔 좋았다. 놓칠 수 없는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다 보여주고 싶다. 이리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지고 난다. 

사슴이 뛰어 노는 대통령궁

  이스타나 보고르는 1745년 총독에 의해 세워 졌고, 1865년 신고전주의의 기품 있는 양식으로 지어졌다. 사전예약이 필수이며 단체에게만 관람이 허용된 까닭에 쉽게 방문 할 수 없는 특별한 관람 이였다.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동행 했던 조은숙 선생의 통역으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대통령 궁은 렘브란트 그림, 천 개의 상이 비치는 화려한 대형 거울, 웅장한 돔 천장의 공연홀 등으로 꾸며져 있었지만, 나는 단지 군림 하는 자의 고독만을 보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는 사슴도 사실은 사냥용으로 사용되기 위함이었고, 그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마지막은 결국 자연이었으므로 이 곳에 이 깊은 초록을 펼쳐 놓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우리는 대통령 궁의 계단에서 정상들의 사진 포즈를 흉내내며 마지막 촬영을 마무리 했다.

  작은 규모의 박제 전시장에서 대형고래의 뼈들과 온갖 곤충들의 채집표본을 보며 어린 시절 숙제 했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었다.

  헤어짐이 아쉬워 보고르 식물원 옆의 노보텔 호텔에 들려 에어컨도 필요 없는 나무그늘 아래서 차 한잔을 마셨다. 노보텔 호텔은 현대식이 아닌 인도네시아 양식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한국교민들 사이에서는 추억을 되새기는 장소라고 했다. 호텔의 석상과 가지런한 나무들이 주변의 자연과 어울리게 설계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날 하루의 단상을 나누며, 시를 나누며 피로를 풀었다.

  인도네시아에 오신 많은 분들께 알려 드리고 싶다. 인도네시아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 오시라고 말이다. 주저하지 말고, 낯선 몇 분의 시간이 지나면, 문화탐방 팀이 경험으로 축척 된 길로 안내해 줄 것이다. 이 나라에서 타인으로 살고 계신 그 나름의 이유들에 대해서도 한편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임을 떠올리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의 튼튼한 문화의 근간이 되어 온 한*인니 문화연구원과 교민사회의 선배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pilogue

  초록은 하나의 풍경이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 풍경화를 그려 본 적이 없지만, 화가의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색은 하나로 완성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색색의 겹들이 덧입혀 지면서 더 깊은 색감을 창조해 낸다고 한다. 나는 이 열대의 나라에서 이 초록의 창조성을 실험 하며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고 싶다. 

  내 명상의 시간에 리찌 나무아래에서 현자들과 대화하며, 빅토리아 연꽃이 있는 연못에서 밤의 향기에 취할 것이며 공중뿌리와  요정 수술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박진감 넘치는 상상으로 행복할 것이다. 내 의식의 흐린 유리창을 초록으로 닦아 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초록의 기억은 소멸되지 않고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퇴적층이 되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게 될 것임을 기쁘게 예감한다.


▲ 한인니문화연구원의 보고르 문화탐방이 지난 4월 23일 열렸다. 오랜 역사를 가진 보고르식물원 안에 야자수로 이루어진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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