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중국인, 인니 이슬람 전파에 큰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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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인니 이슬람 전파에 큰 역할

기사입력 2014.06.04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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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인도네시아에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하 화교)과 이슬람은 형용모순인가? 인도네시아 사람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한인조차 화교들은 거의 불교가 아니면 기독교나 유교를 믿고 있으며, 무슬림이 있다면 극소수일 것이라고 단정하기 십상이다.

화교와 이슬람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이다. 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자칫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다. 1998년 인도네시아가 민주화되기 이전에 종교 당국은 중국인과 화교가 이슬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주제로 하는 학술연구조차 금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화교와 이슬람을 연결 짓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동남아시아 이슬람은 무수한 나라와 도시에 뿌리를 둔 역동적인 코스모폴리탄 문화와 결합돼 있어, 원류인 아라비아의 영향은 물론, 인도와 중국의 전통도 혼재되어 있다. 특히 중국이 인도네시아 문화와 이슬람에 미친 영향은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녹아 들어서 간과하기 쉽다.


▲ 정화제독

세계에 퍼져있는 무슬림 소수 종족들 가운데, 가장 역사가 긴 종족이 중국 본토의 무슬림들이다. 중국의 대제국 당나라(618-907년) 때부터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중동 사람들은 바다와 육지를 통해 중국과 교류했다. 이슬람은 중동에서 인도양을 거쳐 중국 광둥(廣東)과 남동부의 항구도시로 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중해 동부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북서부 이어지는 ‘실크 로드’를 통해 장안(현재의 시안)과 베이징에 이슬람을 전파됐다.

중국 명나라 왕조 시대의 환관으로 이슬람교를 믿었던 정화(鄭和, 1371~1434년) 제독은 영락제(永樂帝)의 명령에 따라 남해에 일곱 차례의 대원정을 떠난 것으로 유명하다. 정화의 함대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진출했다. 정화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1405년 6월에 제1차 원정을 떠났다. 보선(寶船)의 길이 120m 폭 56m가 넘는 당시 초대형 선박이 포함된 정화의 함대는 총 62척 선박에 승무원 총 2만7천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자바 섬 스마랑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군도에 이슬람을 전파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스마랑에 가면 정화 사원(Sam Poo Kong)이 건재해, 당시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을 확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그룹으로 인도 서부지역을 기반으로 특유의 상술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척한 구자랏(Gujarat) 상인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인들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이슬람의 뿌리를 아랍 세계로만 생각하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이런 얘기는 어불성설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서 인도네시아 문화와 동남아시아 정치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진 겔만 테일러 교수가 지적하듯, 인도네시아 항구들을 개발하고 도시를 형성함으로써 무슬림 무역상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거점을 만든이들은 중국인들이었다. 그 가운데 무슬림이 된 중국인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중국인들도 인도네시아와 무슬림을 연결하며, 이슬람을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를 중동의 이슬람 네트워크에 연결해줌으로써 첫 무슬림 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자바섬 최초 이슬람 왕국 드막(Demak) 건립자는 화교


저명한 인도네시아 역사학자 슬라멧 물리아나도 인도네시아에 이슬람국가가 탄생하는 데 자바섬의 중국계 무슬림공동체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리아나는 힌두 제국 마자빠힛(1293~1500년)을 붕괴시키고 자바 최초의 이슬람왕국 드막(Demak)을 세운 라덴 빠따(Raden Patah)의 어머니가 중국계 무슬림이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실제로 중국 기록에 라덴 어머니의 이름이 ‘진 분’으로 나와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또한 이슬람을 자바에 전했다고 알려진 전설의 성인 ‘왈리 송오(Wali Songo)’ 아홉 명 가운데 수난 응암뻴도 중국계 뿌리를 지녔다. 중국 기록에는 응암뻴이 ‘봉스위호’로 기록되어 있다.

15세기부터 이슬람이 동남아시아에 확대되면서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뿌리를 명확히 밝힐 수 있다. 인도네시아 역사학자 리드와 사이디는 “중국인이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큰 역할을 했지만, 역사책에 이슬람을 전파한 사람이 아랍이나 인도 사람으로 기술된 것은 왜곡된 역사라고 볼 수 있다”며 “네덜란드 정부는 인도네시아 식민통치 시기에 토착민 무슬림과 화교 무슬림을 편가르는 전략을 펼쳤고, 한편으론 화교들을 이슬람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시켰다”고 주장했다.

부디오노 인도네시아화교무슬림연합(PITI) 부회장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화교 1천만 명 가운데 수십만 명이 무슬림이며, 인도네시아 남성 무슬림 복장인 바주 꼬꼬(baju koko)도 중국말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무슬림 지도자이며 제 4대 대통령인 고(故) 압두라마 와힛(애칭: 구스두르)은 자신의 조상에 대해 중국 혈통이라며 밝혀, 화교가 무슬림을 전파했음을 한번 더 확인시켰다. 와힛에 따르면 자바섬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군도를 호령했던 마자빠힛 힌두왕국의 브라위자야 5세가 중국의 참파(Campa) 공주와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나았는데, 첫째 아들은 탄엥히안이고 둘째 딸은 탄아록이다. 탄엥히안은 드막왕국을 세운 라덴 빠따이다. 딴아록은 이슬람 신도인 화교 탄킴한과 결혼했다. 탄김한은 드막왕국을 세우는 핵심인물로 와힛 대통령의 조상이다. 와힛의 할아버지는 하심 아샤리로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단체 나들라뚤울라마(NU)를 설립했고, 그의 아버지 와힛 하심은 무슬림 독립운동가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을 믿는 화교는 종교와 민족 측면에서 모두 소수다. 인도네시아에서 무슬림은 최고 계급인데, 이슬람을 들여온 화교 무슬림은 그 아래 계급으로 소외와 차별을 당하는 아이러니가 숨어있다.

[참고문헌] ‘나의 이슬람’ (율리아 수리야꾸스마 지음, 구정은 옮김), 인도네시아사(양승윤 편저), 인도네시아 신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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