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詩鏡 - 나의 자식들에게 / 김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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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鏡 - 나의 자식들에게 / 김광규

기사입력 2014.07.3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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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鏡 - 시가 있는 목요일

안녕하세요. 박정자입니다.

똑같이 정당하게 보이는 두 개의 원리나 결론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이율배반이라고 하지요. 생각과 행위의 중간에서 난감할 때 우리의 갈등은 너무나 큽니다.

흔히, 위험한 데 가지 말고 의심받을 짓 하지 마라는 아버지 말씀도 맞고 평온하게 살지 마라 무슨 짓인가 해라는 내 안의 말씀도 맞을 때, 그런 이율배반을 극복하는 길은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대한 믿음이 최우선이겠지요.

                  



나의 자식들에게 / 김광규

위험한 곳에는 아예 가지 말고

의심받을 짓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대로 집에만 있으면

양지바른 툇마루의 고양이처럼

나는 언제나 귀여운 자식이었다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사람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인생이 힘들 것 무엇이랴 싶었지만

그렇게 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수양이 부족한 탓일까

태풍이 부는 날은

집안에 들어앉아

때 묻은 책을 골라내고

옛날 일기장을 불태우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자꾸 찢어버린다

이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이 짓을 못하게 되어도

누군가 나를 기억할까

어쩌면 그러기 전에 낯선 전화가

울려올지도 모른다

지진이 일어나는 날은

집에만 있는 것도 위험하고

아무 짓을 안 해도 의심받는다

조용히 사는 죄악을 피해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평온하게 살지 마라

무슨 짓인가 해라

아무리 부끄러운 흔적이라도

무엇인가 남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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