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鏡 - 시가 있는 목요일
안녕하세요. 박정자입니다.
물의 얼굴은 몇 개일까요. 생명을 자라게 하는 물, 생명을 쓸어가는 물, 얼음이 되었다가 푸른 하늘에 두둥실 새털구름이 되는 물... 불을 일으키는데 꼭 필요한 물... 셀 수 없이 많은 물의 표정에서 사람의 얼굴을 봅니다.
사람 몸의 70프로가 물이라는 사실을 삶의 70프로가 불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찻잔에 담긴 불의 씨앗을 마실 때면 ‘벌써 숯이 된 뼈’들이 찾아와 괜찮아 괜찮아 산 자를 어루만지는 말이 들립니다...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