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채인숙] 가까운 곳의 미술, 빠사르 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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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가까운 곳의 미술, 빠사르 스니

기사입력 2015.03.30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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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사르 스니는 자카르타의 가장 큰 유원지 중에 하나인 안쫄에 있는 예술촌으로, 대부분 아직 무명이거나 혹은 막 유명 전시장의 호출을 받기 시작한 젊은 화가들의 작업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채인숙이 만나는 일상 속의 예술] 가까운 곳의 미술, 빠사르 스니

글: 채인숙, 사진; 조현영, 채인숙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예술 작품에는 타인의 경험이 대단히 정교하게 축적되어 있고, 잘 다듬어지고 훌륭하게 조직된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예술은 우리에게 다른 문화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가장 웅변적인 예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예술 작품과의 교유는 우리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이해력을 넓혀준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거창하게 세계에 대한 이해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소하게는 거실이나 현관 입구에 그림 한 점이 걸려있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이 얼마나 다른지 말이다. 어느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 내 시선을 가장 먼저 끌어당기는 것은 집안의 책꽂이와 그림 같은 것들이다. 물론 예쁜 그릇들과 아름다운 가구, 맛있는 음식들이 나를 감탄시킬 때도 많지만, 그 사람이 읽는 책과 시선을 두는 그림이야 말로 집 주인의 내면 세계를 짐작하고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집안에 걸어 둘 그림으로 말하자면, 굳이 비싸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예술은 색다르고 화려한 것만이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답거나 화려하거나 슬프거나 혹은 우울하고 매혹적이었거나... 그저 한 순간이라도 내 마음을 움직였고, 일상을 벗어난 감동으로 이끌어 주었다면 그 그림은 이미 훌륭하다. 

▲ 빠사르 스니는 자카르타의 가장 큰 유원지 중에 하나인 안쫄에 있는 예술촌으로, 대부분 아직 무명이거나 혹은 막 유명 전시장의 호출을 받기 시작한 젊은 화가들의 작업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지난 번 발리의 우붓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랬지만, 우리가 이미 손을 뻗칠 수 없을 만큼 높은 가격의 그림들은 그저 화집을 사거나 전시장에 서서 감탄하는 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인도네시아에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많은 화가들이 있다. 그들의 그림은 한눈에 나를 매료시키지만 직접 구매를 하기엔 이미 너무 비싸다.

 내가 즐겨 찾는 빠사르 스니는 자카르타의 가장 큰 유원지 중에 하나인 안쫄에 있는 예술촌이다. 유원지 안에 웬 예술촌이냐 하겠지만, 그만큼 생활 안에서 예술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 아직 무명이거나 혹은 막 유명 전시장의 호출을 받기 시작한 젊은 화가들의 작업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약100여 명의 화가와 조각가,인도네시아 전통 예술품을 만드는 공예가들의 작업실이 밀집해 있다. 집성촌을 이룬 작은 작업실을 천천히 돌면서, 운이 좋으면 화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고, 작업실 안에 있는 그림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 즉석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이곳은 1974년에 세워져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곳이다. 주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화가들이 많지만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거나 유명한 스승 밑에서 제자 수업을 받으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이들도 많다. 가장 나이가 어린 화가는 현재 31살이고, 벌써 60대를 넘긴 노화가들도 활동하고 있다. 아직은 가난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그 중에는 외국 대사관의 초대전이나 각 도시나 단체의 전시회를 통해 젊고 주목받는 예술가들로 그림을 거는 이들도 많다. 

 빠사르 스니에서 작업하는 화가들 중, 요사이 자카르타에서 개최되는 각종 전시회에서 자주 이름을 발견하게 되는 화가들을 꼽자면, 데니 보종 (Deny Bojong), 쭈붕 (Cubung WP), 디딧 (Didit affandi) 같은 이들을 소개할 수 있겠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헤리티지 테마 전시회나 쿠바 대사관을 비롯한 외국 대사관들의 초대 전시회, 혹은 각 대학들의 인도네시아 젊은 미술 세미나 전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름들이다. 

 이제 막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기 시작한 화가들의 새로운 그림들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빠사르 스니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리고 독특하고 다양한 민예품이나 조각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직 그림을 선뜻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면 작은 소품이나 공예품을 하나쯤 고르면서 여유있게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다.      

▲ 빠사르 스니는 자카르타의 가장 큰 유원지 중에 하나인 안쫄에 있는 예술촌으로, 대부분 아직 무명이거나 혹은 막 유명 전시장의 호출을 받기 시작한 젊은 화가들의 작업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빠사르 스니에서 한가로운 주말 오후를 그림과 함께 보내고 해변을 끼고 늘어선 씨푸드 점에서 저녁을 즐긴 뒤, 바다로 향해 나 있는 나무 브리치를 걸어 석양을 감상하며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일도 색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화장실 사용이 불편한 곳이 있거나, 가끔 어느 구역의 해변가를 지날 때 지독한 악취를 감내해야 하지만..)  

  인도네시아에는 정말 많은 미술 갤러리들이 있다. 어느 도시를 가도 그곳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갤러리가 반드시 있다. 자카르타만 해도 아마 수백 개는 족히 될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전통을 지켜 나가려는 인도네시아 인들의 높은 문화적 자존감은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무엇이건 화려하고 깨끗하고 새로워야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형편없는 예술적 안목에 뒷통수를 내리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 빠사르 스니는 자카르타의 가장 큰 유원지 중에 하나인 안쫄에 있는 예술촌으로, 대부분 아직 무명이거나 혹은 막 유명 전시장의 호출을 받기 시작한 젊은 화가들의 작업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인도네시아 현지인 친구들의 집을 가끔 방문할 때가 있다. 갈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는 건, 인도네시아인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이다. 정말 거의 모든 친구들의 집이 마치 갤러리처럼 수많은 그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하기를 즐긴다. 예술에 대한 특별한 조예가 필요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삶 속에서 예술에 대한 깊은 경의와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습관이 몸에 배여있는 듯 하다. 특히나 그들은 예술가가 신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라 생각한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예술가야 말로 신에 가장 근접한 인간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집안에 예술가가 있다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좁은 길을 절대로 넓히지도 않고 낡은 네덜란드 시대의 건물들을 쉽게 허물려고도 하지 않는 인도네시아가 현대 문화에 뒤떨어지거나 경제 발전이 더딘 후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예술에 대한 내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하다는 걸 이미 눈치챘기 때문이다. 길도 넓고 차도 쌩쌩 달리고 높은 건물들이 쭉쭉 뻗어있는 도시에서 살아 온 우리들은 과연 작은 액자에 걸린 그림 한 점을 차분히 바라볼 만한 마음의 여유와 깊이를 가졌는지를 따져보면 알 일이다.     

 이번 주말에는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빠사르 스니로 가 보자. 그곳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만큼 친절한 미소를 지닌 화가들과 인사하며, 점점 삭막해져 가는 우리의 영혼을 우기의 빗줄기처럼 시원하게 적셔 줄 한 편의 그림을 만나보자.   
  
▲ 빠사르 스니는 자카르타의 가장 큰 유원지 중에 하나인 안쫄에 있는 예술촌으로, 대부분 아직 무명이거나 혹은 막 유명 전시장의 호출을 받기 시작한 젊은 화가들의 작업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프로젝트 키위 2014년 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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