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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서부 마두라 유전

기사입력 2011.09.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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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마두라 유전


[글: 김문환 칼럼니스트] 지난 4월과 5월 인도네시아 매스컴에 이틀이 멀다하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있었다. ‘이슬람국가 이념침투’나 ‘씨티은행 간부직원 거액횡령사건’과 같은 인도네시아 국내 이슈가 아니라 한국기업이 운영권(Operator)을 보유하고 있는 서부 마두라 유전광구의 기한연장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국기업에 관한 기사나 한국에 관한 이슈가 이렇게 장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다뤄진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79년 10월26일 궁정동의 총성은 제5공화국을 탄생시켰으나 정권탄생의 명분이 미약했던 신정권은 국정 분야별로 ‘간판사업’을 설정하여 밀어 부치고 있었으니 ‘마두라 유전개발사업’도 그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1980년 8월 2일 코데코사는 ‘북서마두라 광구’ 입찰에 응찰하였으나 선진국 경쟁사들이 시그니쳐 보너스(Signature Bonus)로 3천만불 안팎을 써넣은 데 반해 10분의 1에 불과한 3백만불을 제시하였으니 최하위권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입찰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접한 ‘국보위’의 분위기는 험악하여 무슨 수를 쓰더라도 유전을 확보하라는 서슬푸른 명령을 내리게 된다. 마침 뻐르따미나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하겠다고 유보해 둔 ‘서부마두라 광구’는 석유회사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던 유망 광구였다. 정권실세인 베니 무르다니 장군의 결정적인 역할에 힘입어 이 광구는 수의계약 형식으로 한국기업의 품에 안기게 되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게 된다. 뻐르따미나사의 생산담당 이사인 뜨리술로(Trisulo)가 사표를 내던지며 이에 강력히 반발하였지만 수하르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1980년 8월 12일 코데코사와 뻐르따미나사는 각각 50%의 지분으로 공동개발에 참여한다는 협정서에 서명한다.

1981년 4월 1일자로 현지법인이 설립되어 본격적인 시추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육사생도 시절부터 대통령과 막역한 친구인 국방부 정보본부장 C 장군을 통한 직통 라인까지 가동되어 1984년 3월, KE-2공구에서 스트라이크(Strike)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한국인의 손에 의해 최초로 생산된 42만 배럴의 원유가 태국 국적선 마운드 샴(Mound Syam) 호에 의해 1984년 8월 27일 여수항 호남정유 부두에 하역하게 된다. 궂은비가 내리는 짓궂은 날씨 속에 최동규(崔東奎) 동자부 장관, 람리(A.R.Ramly) 뻐르따미나사 총재 등 150여 명의 국내외 내빈이 식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원로 극작가 한운사(韓雲史)가 작사한「마두라 송(Madura Song)」이 「아, 대한민국」을 불러 국내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가수 정수라(鄭秀羅)의 고음에 실려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일일 19,000 배럴까지 올라가던 생산량이 갑자기 떨어진다는 보고가 시추선(Rig)으로부터 불티 나게 타전된다. 프랑스 전문회사에게 용역까지 주어 펌핑(Pumping)작업도 시도하며 보았지만, 결국 경제성 이하로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서부마두라 유전 개발사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려진다. 한국 동자부의 엄격한 감사결과에 따라 과욕과 기술부족에 그 원인이 있었음을 결론짓고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입사하여 위세를 떨치던 기술담당 부사장 H 박사는 해임된다.

이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추가 시추자금 확보를 위해 정부로비를 반복하였으나, 10년이 경과한 1991년 6월 말 부로 벌써 4억불의 자금이 소진되었고 어언 20년의 세월이 흐른 1990년대 후반엔 모기업(母企業)까지 자금경색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대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1999년 말 코데코 에너지사는 서부마두라 유전 지분의 25%와 폴랭광구의 지분 50%를 스페인 국적의 YPF(실제 운영주체는 미국계)사에 넘기게 되며, 2002년 중국 국영 석유개발회사인 CNOOC는 이 지분을 인수하여 뻐르따미나 50%, 코데코사 25%, CNOOC 25%의 지분구조로 유지되며 현재는 일산 13,400 배럴의 원유와 일산 138백만 피트의 가스를 생산하는 중견업체로 자리하게 된다.

광권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2011년 5월 6일이 임박하자 연장여부와 연장 후의 지분구도에 대해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신규 주주회사로 기존의 3개사 이외에 PT. Sinergindo Citra Harapan과 Pure Link Investment Ltd 라는 생소한 이름이 등장하면서 언론사들은 이 신규업체의 베일을 벗기기에 열중한다. 결국 이들 두 회사가 주요 정파와 연결되어 있음을 간파한 한 시민단체(Indonesian Resources Studies)는 4월 12일 두 회사를 부패방지위원회(KPK)에 고발한다. 그 다음날인 4월 13일 3개 기존 당사자자들이 참석한 회의 석상에서 정부당국은 광권 ‘20년 연장’과 ‘Pertamina-60%, 코데코-10%, CNOOC-10%, Sinergindo-10%, Pure Link-10%’의 새로운 지분 구도안을 흘리게 된다.

그러나 30년 전에 자기들 밥그릇을 뺏긴 적이 있는 빠르따미나사는 이번 기회에 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한다. 즉 4월 18일 에너지광물자원부 (ESDM)와 석유가스청(BP Migas)과의 연석회의에서 100% 지분독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뻐르따미나사의 강력한 로비와 시민단체를 통한 여론몰이를 한 탓인지 5월 5일 정부는 ‘서부마두라 유전의 광권이 연장되었음(Amended and Restated Production Sharing Contract)’을 발표하였고 연장기간은 20년이며 주주로는 뻐르따미나사사와 코데코사가 각각 80%와 20%를 보유하게 되며 뻐르따미나사가 운영권자(Operator)가 되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그러나 종전 25% 주주였던 CNOOC는 정부의 신뢰도에 불만을 표시하며 주주 참여를 자진 포기하였고 신규 주주로 이름을 올리려던 Sinergindo사와 Pure Link사는 외관적으로는 일단 주주명단에서 제외되었다.

5월 9일 이번 서부마두라 유전 광권연장 경쟁에서 탈락한 CNOOC는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나이지리아 앙골라 광구에서 뻐르따미나사와 합작으로 유전개발을 하겠다던 계약을 파기한다고 선언하였고 광구 연고지역 지방자치단체인 그레식군(Kabupaten Gresik)과 방깔란군(Kabupaten Bankalan)은 물론 동부자와 주정부까지 나서 주식할당을 주장할 정도로 서부 마두라 광권연장에 관한 후유증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는 경제전쟁, 특히 자원전쟁이라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양국 정상이 만날 때마다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되었던 ‘서부 마두라 유전 연장’ 건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를 직접 목도하였다. 이제 정략적 사업은 그 주체가 사기업이 된다 해도 정부와 기업이 공조하지 않고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상기 글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2011년 7월호 '한인뉴스'에 게재된 내용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전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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