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영율 성창 대표 “가발을 위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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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율 성창 대표 “가발을 위해 태어났다”

기사입력 2015.08.1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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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 모색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시행하는 2015년 재외동포 언론사 기획취재 지원사업과 관련, 본지가 제출한 ‘인도네시아 한인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 모색’이라는 주제가 선정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50여년 간 수많은 기업이 생겼고 그 중에는 탄탄하게 자리잡은 기업도 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업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경제 발전과 산업구조 변화에 적응하면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기업의 노하우를 살펴보고 향후 한인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해 보겠습니다. 지난 7월부터 인도네시아 주요 지역을 방문해 현장을 취재한 기사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평범한 일요일 오후 자카르타 감비르 기차역에 큰 키의 한국인 아저씨 두 사람이 성큼성큼 플랫폼을 향해 걸었다.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한잠 자기도 하고 미리 싸온 김밥을 나눠먹기도 하다가... 어둠 속에 중부자바주(州) 뿌르워꺼르또 역에 내렸다. 그들이 경영하는 가발공장과 1만3천여 명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소탈해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김영율 PT 성창인도네시아(이하 성창) 대표는 지난 3일 뿌르발링가에 있는 성창 본공장을 방문한 본지 기자와 만나, “인류가 존속하는 한 가발 수요는 계속될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탈모로 인한 가발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미용 목적의 가발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인도네시아 1위 가발제조회사인 성창의 사장 겸 재 인도네시아 모발협회장인 김영율 씨는 한국에서 가발산업이 한창이던 1960년 말에 가발디자이너로 출발해서 승승장구했고, 1980년대에는 바이어의 권유로 직접 가발회사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한국에서 가발산업이 쇠퇴하던 1990년대에 인도네시아로 이주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지금은 연매출 8,500만 달러 규모의 가발회사 대표가 됐다. 

아버지가 성공모델이라는 차남 김대근(32) 이사는 “자카르타에서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JIKS)를 다니면서도 방학에는 이곳에 와서 아버지와 지낸 경험이 있어서 시골과 공장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며 "일할 때는 아버지와 많이 부딪힌다. 그래도 가족기업은 장점이 90%고 단점이 10%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 김영율 성창 인도네시아 대표.

다음은 김영율 대표와 일문일답. 

-- 가발디자이너로 시작해 자수성가로 굴지의 가발회사 대표가 된 김영율은.

▶ 고등학교 때 계속 공부할 것인지 기술을 배울 것인지 선택하라는 아버지 말씀에 한 달을 고민하다가 기술을 배우기로 결정했다. 곧장 아버지 소개로 가발회사 견습생으로 들어가 방과 후에 기술을 배웠고 고등학교 졸업 후 정식직원이 됐다. 이후 1986년에 독립해 아내와 함께 일하면서 회사를 키웠다.우리 애들은 어렸을 때 공장 계단에 앉아서 일하는 걸 구경했고 조금 커서는 방학 때 용돈을 받으면서 일을 도왔다. 주문이 밀려서 일손이 모자라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살았다. 작은 아들에게 그 시절에 대해 물었더니, “어릴 때는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크게 불만도 없었다”고 답하더라.    

--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 1990년에 들어서면서 한국에서 제조업 여건이 악화됐고, 해외 진출을 모색하다가 중국과 베트남보다 인도네시아가 경영 여건이 낫다고 판단, 인도네시아에 외국인투자법인으로 PT 성창인도네시아를 설립했다. 

-- PT 성창인도네시아는. 

▶ 성창은 전체가발, 반가발, 헤어피스, 익스텐션, 흑인ㆍ백인가발 등 다양한 가발을 생산해 미국과 아프리카를 포함해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중부자바 뿌르발링가에 본공장이 있고, 족자카르타, 보보사리, 시다르자, 반자르 등 주변지역에 7개의 자공장을 두고 있다. 직접 고용한 인원은 약 8,000명이고, 외주 형식으로 고용한 인원이 약 5,000명으로 총 13,000명의 인원을 고용하고 있다. 

-- 회사를 운영하면서 산전수전도 많았을 텐데, 위기 극복은. 

▶ 신제품 개발과 열정이었다. 운도 따라주어서 1990년대말 아시아 경제위기 때는 환율의 혜택도 보았다. 인도네시아 이주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고 사기도 당했지만 아픈 마음을 다스리며 수업료라 생각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았다. 어떤 경우에도 품질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납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바이어들의 신뢰를 얻었다. 

-- 인생의 3분의 2를 가발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 1969년에 시작해서 2015년까지 46년 간 외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최고의 가발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하나 성과가 나고 주변에서 잘한다고 칭찬해주니까 일이 재미있어지고 좋아졌다. 예순 넷의 나이에도 현장이 즐겁다. 한때 '나는 가발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 속에는 가발을 이렇게 저렇게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가득 차있다. 한국에서 습득한 최고의 기술과 경영 노하우, 제품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한번 시작한 것은 끝내겠다는 끈기와 승부욕, 안정적인 가정 등이 지금의 나와 성창을 만들었다.    

▲ 김영율 성창 인도네시아 대표.

-- 가족기업에 대해.

▶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 있는 가발공장에 잘 오려 하지 않고 와도 오래 근무하지 못한다. 결국 가족기업으로 가게 됐다. 회사에 대한 열정도 가족이 일반직원보다 크다.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는데, 모두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창업 초기에는 아내가 참여했고, 지금은 두 아들이 각각 해외영업과 생산 분야에서 일어하고 있다. 딸 부부는 인도네시아 내수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장남인 김창근(35) 상무는 한국 대기업에서 스카웃제의를 받고도, 나의 회유와 협박? 그리고 미래를 고려해 성창에 자리를 잡았다. 차님인 김대근(32) 이사는 좀더 현실적이어서 가발산업의 가능성, 다른 기업에 취업했을 경우 권한과 보수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더니 아버지와 일하겠다고 했다. 

-- 기술 이전은 현지인에게.

▶ 한국인 직원들이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고 장기간 근무하지도 않기 때문에 현지인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른 기업과 비교해서 조건이 조금 좋거나 회사에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극복하려 하지 않고 바로 이직을 한다. 따라서 전문성을 키울 수가 없다.  

--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에 대해

▶ 기업은 지역사회와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독거 노인 지원. 고아원 지원, 저소득층 학생 장학금 지원, 직원 주택 보수 비용 지원, 지방정부 사업과 지역문화행사 지원 등의 CSR 사업을 한다. 인도네시아 공장 설립 직후에 2년 간 모든 직원의 집을 방문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 복지와 지역 협력 사업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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