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 '채울 수 없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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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채울 수 없는 그릇’

깡통의 수다 18
기사입력 2017.10.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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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에서 사는 김은숙 작가가 <깡통의 수다>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문득 자신의 삶이 깡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깡통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지 스스로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족자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사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인도네시아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족자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112 1.jpg▲ [사진: 김은숙]
  
삶이 그릇이라고 하면 혹은 통이라고 하면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그릇이 될 것이고 통이 될 것이다. 내 삶의 그릇도 죽어라고 채운다고 채웠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새도 한참 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이 싱가포르로 학교를 정할 즈음에 나도 사업 구상을 해서 돈을 벌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남편의 힘겨움을 덜어 주겠다는 참신한 꿈에 어쩌다 보게 된 집을 삼일 밤낮을 고민한 끝에 남편에게 허락을 얻어 보험 헐고, 십년동안 조금씩 모아둔 통장도 모두 모아 헐고, 한국에서 대출까지 끌어 어렵게 집을 장만하고 지인집도 반 억지로 빌리고 그야말로 차도 수리하고 허가도 야무지게 착착 밟았다. 

드디어 지인인 여행사 사장언니가 전화를 해왔다. 한 달 동안 숙식을 원하시는 스님이 오신다고 했으며 같이 잘해보자고 했다. 조식은 내가 바쁜 관계로 도시락으로 해결하기로 했고 점심 저녁은 스님 혼자 해결한다는 조건에 흔쾌히 승낙했다. 드디어 공항으로 여행사 사장언니와 손님을 마중 가는 날 나의 가슴은 약간 설렜다. 잘하겠습니다. ‘한 달 동안 잘 계시다 가주세요!’ 마음이 당부를 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얼마를 기다렸는지 연착에 어영부영 하다 보니 드디어 손님이 나오셨다. 일흔이 넘으신 할아버지 스님이셨다. 갑자가 하늘이 노래졌다. 스님이시라 밥해드리는 것도 걱정이 되긴 되었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이제는 스님 체력을 걱정해야 하는 그야말로 이 노릇을 어쩌나 싶을 정도로 암담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오늘 공항에 나온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낭랑한 목소리로 여쭈었다. “스님 오시는 데는 불편하지 않으셨나요? 조식을 보내려고 하는데 가리시는 음식이 있나요? 아니면 주의해야 할 음식은요?” “육류가 아니면 다 괜찮습니다. 육류는 두드러기가 나서요.” “알겠습니다. 주위 하겠습니다.” 너무 뻔 한 답을 예상하고 가서 잠자리 봐드리고 사장언니는 언니대로 나는 나대로 암담해 하면서 집으로 돌아 왔다.

첫날 음식은 된장국에 생오이무침, 그리고 밑반찬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된장국에 고기도 안 되고 조미료, 다시다도 안될 것 같고 해서 이것저것 집어넣고 한국에서 시누이가 챙겨준 매실로 오이도 무치고 된장국에도 넣었다. 비록 장롱 면허증이지만 조리사 자격증도 있고 주부경력 20년이 넘은 나다. 그런 내가 된장국에 이런 이상 괴상망측한 맛을 낼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족들, 남편과 아이들이 당장 된장국 맛이 이상하다고 했다. “괜찮아 몸에 좋다는 매실로 간을 해서 그러니 그냥 먹으라고 했다. 그날 저녁 스님을 만나 음식 체크를 하는데 된장국이 그대로 있었다.”안 드셨네요? “ 하고 여쭈었더니 된장국이 쉰 것 같아서 그냥 두었다고 하셨다. 아무 말씀도 못 드렸다. 

115 1.jpg▲ [사진: 김은숙]
 
어떻게 일주일이 갔는지 가고 있었다. 조식 도시락은 날마다 날랐고 마지막 전날은 김치찌개를 끓이며 양심은 잠깐 숨겨놓고 조미료를 꺼내서 간을 했다. “음~ 바로 이 맛이야!” 그 옛날 나의 할머니가 끓여 주시던 그 김치찌개 맛이 났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사실 우리 집은 큰 아이가 4살 때 콩팥이상 판정을 받고나서 나는 조미료를 모두 치웠다. 그런데 할아버지 스님한데는 어쩔 수 없이 쓰면서 죄송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미료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 할머니가 증명해주고 가셨다. 우리 할머니는 조미료 하나로 모든 간을 내셨다. 물론 손맛도 있으셨겠지만 조미료는 그야말로 할머니의 독특한 맛이었고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조미료를 많이 드셨어도 100세까지 사셨으니 스님께 덜 미안해해도 되지 싶었다. 그래도 죄송한 마음이 위로가 안 되었다. 

에고고 정말 내 팔자야!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고 정말 숙박업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잘된 건지 어떤 건지 스님이 일주일만 지내시고 네팔로 가신다고 하셨다. 내 사전에 무슨 돈을 벌까 싶을 정도로 앞이 깜깜했던 순간 스님의 탁월한 선택이 날 살렸다. 그래도 스님에게 돈 받는 게 양심에 찔려서 가시기 전날 하루 시간을 내서 사원을 구경시켜드렸다. 두 군데 사원을 돌아 보고나서 차가 어떻게 꼬이는지 우리 차가 2시간을 기다려도 안 돌아와 ‘쁘람바난’ 주차장에서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스님 생강차 드실래요? 저게 ‘론데’ 인데요. 우리나라 생강차와 비슷해요”
“그러지요 뭐”
“스님 정말 죄송해요 차가 이리 될 줄 알았으면 스님을 더 편하신 대로 모실 걸요, 그런데 스님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요 스님은 평생 동안 못 해보셔서 꼭 해보시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뭐라 하실 지 모르지만 여자일 것도 같아서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출가를 했습니다. 그때는 미친 사람처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불교경전을 찾느라 돌아 다녔지요? 그렇게 세월을 경전을 찾다보니 이래 사람이 늙어 버렸습니다.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럼 혹시 지금이라도 스님이 꼭 가지고 싶다거나 해보고 싶다거나 탐나는 물건이 없으신가요?(여자요?)
“있습니다. 이렇게 무더기로 방치된 사원의 돌들이 탐이 나네요. 어떻게 이 돌들을 재건 하는데 다시 한 번 심려를 기울여 보고 싶다는 게 큰 욕심이라면 욕심입니다.”  

스님은 그 다음날 떠나셨다. 인도네시아 족자에서 부처에 대해서 생각 하시기엔 시내와 ‘보로보드르’ 사원이 너무 멀었고 대신 네팔은 가까이에서 사원과 접할 수 있다고 하셨다. 평생을 살면서 젊음을 바쳐 갈구했던 경전을 못 찾으신 스님도 늙으셨다. 부자도 늙고, 똑똑한 사람도 늙고, 나도 늙고, 누구나 늙는다. 부자도 영원히 부자로 살 수 없고, 똑똑한 사람도 예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삶이라는 그릇을 채우고 또 채우고 죽어라 노력만 하다가 가는 것 같다. 스님처럼 경전을 갈구하며 사는 삶이나 내가 추구하며 사는 삶이나 어느 것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살면서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게 모든 이들의 삶이라는 그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책에 조정래 님이 중국 사람이 태어나서 못해보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쓰신 것 같다.  ‘중국 글이 하도 많아서 다 알지 못하고 죽는 것, 중국 음식이 하도 많아서 다 못 먹어 보고 죽는 것, 그리고 중국 땅이 하도 넓어서 다 다녀보지 못하고 죽는 것’ 이라고 했다. 우리네 삶도 뭐가 다를까? 아무리 돈을 벌려고 해도 다 못 벌고 죽을 것이고 장수와 미를 추구하며 살아도 이러나 저러나 사람은 죽는다. 다만 어떤 그릇으로 어떻게 채워가며 살다가 죽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님은 경전과 씨름하며 사찰에서만 생활하였겠으니 나보다는 죄가 덜하실 것 같다. 내가 이제까지 내 그릇에 허물을 채우며 살았다면 나머지 남은 나의 인생은 어느 노래 가사처럼 ‘선하고 아름답게’ 채우며 살다가 가고 싶다. 나를 위하여 나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하여 그 정도는 해주고 가야 엄마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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