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에세이] 물따뚤리 박물관(4/4)/사공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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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물따뚤리 박물관(4/4)/사공 경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9.01.0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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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ik Lebak Motifs.JPG▲ 르박군의 바틱 모티브
 

물따뚤리 박물관 (Museum Multatuli)                               

사공 경

6 전시관은 르박 군 역사에 관한 것이 전시되어 있다. 르박 군 설립 문건과 지도, 르박 군 성벽지도 및 기타 서류, 르박 군 지역 역대 지도자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바두이족이 손으로 짠 직물, 나무로 된 직조기, 찌당향 (Cidanghyang) 지역 비문 복제품, 식민통치 시대 때 군수 복장과 휘장, 예술적인 옷걸이도 전시되어 있다. 

1828년 12월 2일 르박군이 창설되었다. 군 창설 이전, 르박 지역을 이끈 인물은 슨자자 (Sendjaja)이다. 

나따느가라.jpg▲ 나따느가라
 
옷.jpg▲ 나따느가라가 입었던 옷
 

나따느가라(Raden Karta Natanegara, 1796~1879)는 보고르 자신가 하급 관리였는데, 네덜란드에 대항한 여성 투사 감빠란(Gamparan)이 일으킨 항쟁을 진압한 공로로 르박 2대 군수가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군수 직을 유지했다. (1830~1865) 전시된 군수 의전 복장은 나따느가라가 착용한 것이다. 막스 하벨라르에 등장하는 주민들의 피를 짜는 그 군수이다.

데커르, 즉 물따뚤리(Edward Douwes Dekker)가 르박 군수보좌관으로 임명된 그 다음 날인 1856년 1월 22일에 르박 지역 지도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그 유명한 장면도 전시되어 있다.

“반뜬, 끼둘(Kidul) 지역의 지도자 여러분, 우리 지역이 매우 가난하기 때문에 분명 뜻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왜 알라가 우리를 여기에 보냈는지를...” 

18세기- 20세기 동안의 르박 지역 풍경을 담은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1920년대 랑가스비뚱 광장, 군수 관저, 르박 군수 보좌관 관저가 보인다. 공중에서 바라본 1940년대 랑까스비뚱과 군수 보좌관 관저, 통제관 관저, 감옥, 군수 관저, 커피 집하지, 커피 창고도 보인다. 요새기가 그려진 지도를 통해서도 르박 지역에서도 커피가 강재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90년부터 1939년까지 약 3만 명의 자바 사람들이 남아메리카에 노동자로 송출된다. 그 중에는 르박 출신도 있었다. 그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했으며 일부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자료도 전시되어 있었다.  

Orang-orang Rangkasbitung.JPG▲ 르박 지역과 연관이 있는 유명인들
 

7 전시관은 르박 지역과 연관이 있는 유명 인사 여덟 명의 인물을 묘사하였다. 마리아 울파(Maria Ulfah), 독립운동가 하지 아구스 살림(Haji Agus Salim), 공산주의 딴 말라까(Tan Malaka)와 스마운(Semaun), 록밴드그룹 유진(Euguni van Beers), 마스 다르나 꾸수마(Mas Darna Kusuma), 영화감독 미스바흐 유사 비란(Misbach Yusabiran), 시인 렌드라 (WS. Rendra)이다. 

렌드라(W.S. Rendra, 1935.11.7.)는 시인, 극작가, 단편 소설가로 1967년 족자에 ‘Burung Merak'이라는 극단을 창립한다. 막스 하벨라르에서 영감을 받아, 1990년 그는 ‘랑까스비뚱 사람들’이라는 시집을 출간한다. 시집에서 그는 식민통치자들의 부패상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소시민의 무력함을 노래하는 시도 있고 조국을 떠나 외국에서 유학하는 학생의 눈에 비친 조국의 암담함을 노래한 시도 있다. 

마리아 울파 산또소(Maria Ulfah Santoso)(1911.8.18~1988.4.15) 반뜬 세랑에서 출생하였으며 인도네시아 여성으로 최초로 네덜란드 Leiden 대학교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46년~1947년까지 샤흐리르 내각에서 사회부장관을 역임했다. 1950-1961년까지 인도네시아 영화검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게 된다. 

미스바흐 유사 비란(Misbach Yusa Biran,1933.9.11.~2012.4.11)은 랑까스비뚱 출신으로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단편 소설가, 다큐멘터리 영화의 선구자이다. 1975년 설립된 영화 필림보관소 관장이며, 자카르타예술교육협회의 대표도 역임했었다. 1950년대, 학생 시절에 이미 영화감독을 시작했으며 인도네시아 영상 보관소를 만들었다. 감독한 영화 중 <반짝이는 빛 뒤에서, Di Balik cahaya gemerlapan>는 1967년 인도네시아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딴 말라까(1897.6.2.~1949.2.21.)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독립 운동을 하였으며 MURBA 당을 창설한 인도네시아 민족영웅이다. 랑까스비뚱은 반뜬 지역 혁명가들의 중심지였다. 딴 말라까는 여섯 명의 청년과 함께 자카르타 청년회의에 반뜬지역 대표로 선출된다. 독립 후, 그는 좌익의 지도자가 된다. 마디운에서 공산당 폭동이 1948년 11월 종식된 후, 꺼디리(Kediri)로 가서, 공산당 잔류 세력을 규합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다가 총살형에 처해진다. 1963년 3월 28일, 수카르노 대통령 결정 제53호에 의거 딴 말라까는 국가 영웅으로 추서되었다. 

하지 아구스 살림(Haji Agus Salim, 1884.10.8~1954.11.4)은 1961년 12월 27일, 인도네시아 대통령 결정서 제657호로 국가 독립 유공자로 추서되었다. 1915년 살림은 이슬람연합(SI)에 참여하게 되며 쪼고로아미노또를 이어, SI 두 번째 지도자가 된다. 

1946년~1950년 기간, 아구스 살림은 인도네시아 정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위대한 어른”이라는 호칭을 받게 된다. 그는 외무부장관, 명예기자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까지도 그의 날카로운 비판은 인도네시아 저널리즘의 표상이 되고 있다. 

Multatuli.JPG
 

물따뚤리는 마지막 전시관에서도 외치고 있었다. “성장하고 배고프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라. 행동, 아픔, 감정이 없는 침묵은 죽음이다.”라고.
인도네시아 탈 식민정신과 반 식민투쟁에 있어 물따뚤리가 차지하는 의미에 대한 질문에 우바이관장은 “물따뚤리는 사람에 의한 사람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반대했습니다. 물따뚤리는 피 식민인에 대한 연민과 인간애를 강조했습니다. 『막스 하벨라르』는 식민지 아래에 있던 인도네시아에서 윤리정책을 시행될 수 있게 하는 기초가 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독립의 필연성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막스 하벨라르』는 독립 후 네덜란드의 재침략에 대항하여 민중들이 죽창으로 단결하여 식민지주의를 종식시키는 동기가 되었으며 아프리카와 세계 다른 지역의 탈 식민지화의 물결을 이끄는 촉매가 되었다. 

인도네시아 민중들의 마음과 운명을 이해한 물따뚤리의 연설을 가슴에 담고 박물관을 나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곳은 가난한 지역이고 이 점이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라는 가난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뭄의 땅 위에 비를 내리게 하고, 목마른 꽃에 이슬을 맺히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하루의 노동에 지쳐 있는 사람을 찾아 위로 하고, 더 이상 차용금을 내지 못해 길가에 주저 않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를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곳으로 보냈습니다. 그는 아직 추수가 끝나지 않은 곳에 나를 있게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쁨은 볏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볏단 스스로가 파종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습니다. 신이시여, 언젠가 내가 당신의 아들이었음을 말하기 위해 나를 이곳에 보내셨는지를> 

어느 누가 물따뚤리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 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그 시대에 지배자인 기독교 백인이 이슬람에 젖어 살고 있는 반뜬 원주민을 위해 피를 토하며 나설 수 있는가? 그 당시 그는 유럽인들에게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시인 렌드라는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신의 세계에서 저울질되고 평가된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랑까스비뚱에서... 
물따뚤리 박물관(Jl. Alun-Alun Timur No.8, Rangkasbitung, Kabupaten Lebak, Banten 42312) 


인문창작클럽(INJAK)
인문창작클럽 (인작: 회장 이강현)의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임입니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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