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길고 복잡했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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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복잡했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의 성립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9.03.2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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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석 / UPH 경영학부 교수


1949년 12월 27일 인도네시아 연방 공화국 (Republik Indonesia Serikt, RIS)이 시작되었을 때, 이 연방 공화국에서는 루피아라는 이름을 동일하게 사용하지만 발행국이 다른 여러 가지 루피아가 거래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중앙은행인 BNI(Bank Negara Indonesia)가 발행한 루피아(Oeang Republik Indonesia,ORI), NICA(Nedelandsche Indische Civil Administrative)의 중앙은행인 자바은행(De Javashe Bank)이 1942년 이전에 발행한 화폐와 독립 전쟁 기간(1945-1949)에 발행한 새로운 화폐(루피아/굴덴), 그리고 일본의 인도네시아 지배(1942-1945) 기간에 중앙은행이었던 Nanpo Kaihatsu Ginko가 발행한 화폐 (일본 루피아) 등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 인도네시아는 1953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중앙은행인 Bank Indonesia를 구성한다. 

왜 인도네시아 연방 공화국은 여러가지 화폐를 인정하면서 시작해야 했을까? 또 3년이 넘는 기간을 중앙은행을 만들기 위해서 기다려야 했을까? 중앙은행을 만들면서 그들이 가장 고민했던 것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네델란드와 일본 지배 시기의 중앙은행 (1922-1945)

인도네시아의 현대적 의미의 중앙은행은 1818년 자바은행(De Javasche Bank)의 설립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설립된 자바 은행은 국립 은행이 아니었지만, 네델란드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민간기업 De Nederlandshe Handel Maatschappy이 합작한 형태였다. 발권 은행에 더하여 상업 은행의 역할을 하던 자바 은행은 1922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한 발권 은행의 권한을 부여 받게 된다. 이로 인해 사기업으로 출발한 자바 은행은 이사, 은행장 등의 임명 영업 활동 등에 있어서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된다.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던 힌디아 블란다 정부는 통화 정책을 통해 인도네시아 지역의 통화와 네델란드 통화 간의 1:1 환율을 유지하였다.

당시 인도네시아에 있던 대부분의 네델란드 기업가들은 수익을 네델란드로 송금하거나 네델란드에서 거래하였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내의 자본 시장의 발달은 미미했다. 유동성이 필요한 경우도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바은행이 아닌 네델란드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를 선호했다. 이로 인해 자바은행의 환율 체계는 1930년대의 대공항과 2차 세계 대전 시기를 제외하고는 안정적일 수 있었다. 
자바은행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최종 대출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일종의 일반 은행으로서 자바은행은 다른 상업 은행보다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낮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차별로 유럽과 중국 기업들이 선호하였다. 상업적 이익에 관심을 둔 거래들로 인해서 자바은행은 중앙은행의 자세를 가진 관계자들을 양성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이 은행에서 근무했던 네델란드 사람 중 중앙은행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자는 전무했다.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중앙은행 (1945-1949)

일본의 일방적인 항복 이후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나 연합국의 일부로서 인도네시아로 돌아온 네델란드인들은 인도네시아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NICA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인도네시아에 두 개의 정부가 있게 된 것이다. NICA 정부는 1945년 10월 10일 자바은행으로 하여금 다시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게 한다. NICA 정부는 네델란드에서 굴덴의 평가 절하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통용되던 굴덴을 1949년 9월에 29.1% 평가 절하한다. 그리고 자바은행은 일본 점령기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Nanpo Kaihatsu Ginko을 인수하여 NICA가 점령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네델란드의 1차 공세가 끝난 후에는 (1947년 7월 21일) 빨렘방, 찌레본, 말랑과 빠당에 지점을 열게 되고, 네델란드의 2차 공세에 성공한 이후에는(1948년 12월 19일) 족자와 솔로, 꺼디리 지역까지 지점을 넓혀 가게 된다. 그러나 족자 지점은 외교적인 협상의 결과 1949년(6월 29일)에 문을 닫게 된다.

발권 은행으로서 역할을 맡은 자바은행은 1948년에 이르러 일본 지배 이전에 통용되던 힌디아 블란다의 굴덴/루피아와 새로 발행된 굴덴/루피아에 합법적인 통화의 지위를 부여한다. 통화량 공급을 책임졌던 자바은행은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가격을 강력하게 통제하였다.
이로 인해 높은 가격으로 수입한 물건들을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불합리함으로 인해 싱가폴과의 밀무역이 발생하기도 한다. 통제 가격 정책은 초기에 의복에 관련해 시행되었지만 확대되어 쌀에도 적용하였다. 결국 강제적인 가격 통제 정책으로 자바은행은 통화 가치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독립준비위원회가 기초한 임시 헌법에 따라 1945년 10월 19일 인도네시아 은행 법인을 설립하고, 인도네시아 은행(Bank Indonesia)이라는 이름의 중앙은행을 설립하는 준비를 시작한다. 얼마 후 Bank Negara Indonesia (BNI)가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946년 10월 30일에 ORI(Oeang Republik Indonesia)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화폐 '루피아'를 금본위제로 발행하게 된다. ORI 루피아는 일본 화폐인 루피아와 교환될 수 있도록 자바와 자바 외 지역에서 다른 비율로 책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통치 지역에서 NICA 통화와 일본 화폐 사용을 금지하게 된다. 당시 인도네시아 실효 지배 지역에서 ORI 루피아에 기초한 최고 가격제 등이 실행되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1948년에는 생필품의 가격이 250-260%에 이르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더 나아가 전쟁 상황은 ORI 루피아의 지속적인 상용화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는 각 지방 정부에 ORIDA라 불리는 지방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하고 ORI와 교환을 해주었다. 그러나 앞의 법령에는 BNI를 명확히 중앙은행으로 명시되지 않았고, 몇가지 중앙은행으로서의 의무가 부과된 BNI는 이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한계점을 노출하게 된다.

ori 루피아 100.jpg▲ 전자상거래로 거래되고 있는 ORI 100루피아 지폐
 
1949년에 이르러 양국 간의 원탁 회의에서 인도네시아(Republik Indonesia, RI)가 독립을 얻게 되는데, 이 때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 연방 공화국(Republik Indonesia Serikat, RIS)의 일부로서 주권을 인정 받았다. 경제 문제를 다룬 19조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연방 공화국은 네델란드 정부에 43억 굴덴의 빚을 지게 되는데, 이 채무를 변제하기까지 화폐와 발권 은행의 변화에 대해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NICA의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자바은행이 인도네시아 연합 공화국의 발권 은행의 역할을 하는 공식적인 중앙은행으로 규정된 것이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의 발권 은행이었던 BNI는 이후 중앙은행이 아닌 일반 상업 은행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1950년 8월 15일에 인도네시아 연방 공화국은 해체하고 현재 인도네시아 전지역을 포괄하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을 설립하게 된 이후에도, 자바은행(DJB)은 여전히 발권 은행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게 된다. 발권 은행을 바꾸고 중앙은행을 만들기 위해서는 헌법에 따른 법률이 먼저 만들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ank Indonesia)이 만들어지기까지 (1950-1953)

자바은행은 발권 은행이지만 네델란드 소유의 사기업이었기에 여러가지 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중앙은행으로서 역할을 행하기에는 부적합한 면이 많았다. 1950년 주권이 인도네시아에 이양된 후에도 자바은행은 네델란드에 의존하는 통화 정책을 고수했다. 자바은행장은 여전히 인도네시아에 많이 있는 네델란드 은행의 자유로운 신용을 보장하는 인도네시아에서의 통화 시스템을 주장하게 된다. 이로 인해 새롭게 성립된 초기 인도네시아 정부 통화 정책은 정부의 무간섭을 근간으로하여 자바은행, 곧 네덜란드의 사적인 한 은행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또한 자바은행이 추구하는 네델란드에 종속되는 통화 정책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입장에서 점점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이 문제를 해소하고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1951년 6월 19일에 자바은행의 국유화를 결정하게 되고, 소유권의 99.4%를 네델란드의 주식 시장에서 시가의 120%로 구입함으로써 자바은행은 국유화된다. 이후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고 2년 여 간의 준비를 통해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을 역할을 감당하는 인도네시아 은행 (Bank Indonesia)이 만들어지게 된다.

자바은행.jpg▲ 바타비아의 자바은행, 현재 중앙은행 박물관 (구글이미지)
 
새로운 중앙은행을 만들고자 한 이들이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샤프루딘 쁘라위라느가라(1951)에 따르면 핵심 논점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관계였다. 정부의 통제 아래 둘 것인지 독립성을 부여할 것이지의 여부가 핵심 논점이었다. 독립성을 부여할 때 중앙은행으로서 정치적인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을 고민하게 했던 것은 당시 인도네시아가 저개발국가였기에 정부에서 경제 성장을 위해 모든 정책을 다룰 수 있게 되면 효과적이라는 논점이다. 그 타협의 결과로 정부와 중앙 정부의 정책 불일치를 다룰 수 있는 재무부 장관을 의장으로 하고 중앙은행장이 위원이 되는 5인의 금융통화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의 논점은 은행의 은행으로서 일반 은행과 같은 대출 업무를 관장할 것이냐의 여부였다. 그들의 고민은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일반적인 은행의 은행으로서의 업무만을 취급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미발달된 금융 시장의 상황과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의 금융 기관이 해외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이로 인해 BRI (Bank Rakyat Indonesia), BNI (Bank Negara Indonesia), BIN(Bank Industri Indonesia) 등 상업 은행이 있었지만 이들을 통해 경제 성장에 필요한 대출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초기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1953년 7월1일에 성립되지만, 알리 와르다나 (1964)는 그 역할에 있어서 여전히 자바은행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법 7조에 나타난 것을 제외하고는 자바은행이 가진 권한보다 확장된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었다. 중앙은행법 7조에는 새롭게 추가된 중앙은행의 기능 곧 통화 가치의 안정, 국내외의 입출금 시스템의 구축, 금융 산업에 대한 감독 등이 있다.
살펴 본 것처럼 인도네시아는 네델란드의 오랜 지배, 1942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지배, 연이은 4년 간의 네델란드와의 독립 전쟁은 짧은 시간의 지배 세력 교체를 통한 독립을 이루게 된다.그러나 짧은 기간에 일어났던 급격한 정치적인 변화를 따라가기엔 일반 국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화폐의 변화, 경제 시스템의 변화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변화를 체제로 만들어 내는 진통이 필요하였기에, 여러가지의 통화를 교환 수단으로써 인정하고, 인도네시아의 상황에 적합한 중앙은행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오랜 시간의 숙고와 토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고도서

Ali Wardana, (2007), The Indonesian Banking System: The Central Bank in The Economy of Indonesia ed. by Bruce Glassbuner, Equinox Publishing Pte Ltd.

Sjafruddin Prawiranegara, (2005) Nasionalisasi De Javasche Bank, in Pemikiran dan Permasalahan Ekonomi di Indonesia dalam Setengah Abad Terakhir 1 (1945-1959), ed, by Hadi Soesastro et al., Penerbit Kanisius

Sumitro Djojohadikusumo, (2005) Kedudukan Bank Negara, in Pemikiran dan Permasalahan Ekonomi di Indonesia dalam Setengah Abad Terakhir 1 (1945-1959), ed, by Hadi Soesastro et al., Penerbit Kanisius.

History of Bank Indonesia from https://www.bi.go.id/id/tentang-bi/museum/sejarah-bi/pra-bi/Pages/prasejarahbi_1.aspx to https://www.bi.go.id/id/tentang-bi/museum/sejarah-bi/pra-bi/Pages/prasejarahbi_8.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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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클럽 (인작: 회장 이강현)의 회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개개인의 다름과 차이를 공유하고 교류하면서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임입니다.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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