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Urban palimpsest : 문지르고 다시 겹쳐 쓴 도시, 자카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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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 palimpsest : 문지르고 다시 겹쳐 쓴 도시, 자카르타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9.09.1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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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의용 (PT.MAP A&E INDONESIA 법인장, UNIVERSITAS GUNADARMA 교수)
 

1. 새로운 성벽과 밀려난 원주민

 파란 눈의 서양인들은 낯선 동남아시아의 섬에 자신이 살았던 유럽식 도시, 그것도 결점이 없는 유럽식 이상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그들은 멋드러진 운하를 만들기 위해 원래의 지형에 성토를 하고, 칼로 도려내듯 운하를 만들면서 자신이 살아왔던 도시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를 원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국의 귀족적인 특성과 문화도 고스란히 이식하길 희망하여, 현지인들은 출입하지 못하는 분위기 있는 서양식 까페도 만들었다. 이 까페는 지금도 일반서민은 이용하기 힘든 금액의 관광지 까페가 되어, 여전히 외국인들로 들어차 있다. 식민도시 바타비아(BATAVIA)는 이렇게 만들어졌으며, 자바 섬의 낯선 이방인은 이 섬들의 원주민을 400년 동안 지배하고 군림하였다. 자카르타의 탄생 속에는 몰락한 서양 귀족의 탐욕과 원주민들의 한숨과 탄식이 남루하게 덧칠되어 남아있다.

바타비아 계획안과 건축물.jpg▲ 바타비아 계획안과 건축물
 

2. 아비정전의 도시

 기나긴 식민지 시대를 마감하고 맞이하게 된 독립은 마치 한밤의 도적처럼 찾아왔다. 느닷없이 다가온 독립은 준비되지 않은 복권당첨자의 삶처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격랑의 시간이었다. 열망했던 독립된 조국이었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는 알 수 없었던 아비처럼 자카르타는 “독립된 새로운 조국”이라는 구호 아래 출처없는 기념비적인 서구식 건축물과 유물화 된 과거의 형식들이 혼재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독립된 자랑스러운 국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거대한 광장(MONAS)이 만들어졌지만, 지나치게 거대한 스케일은 무더운 이 나라에 사람이 모일 수 없는 텅 빈 광장을 만들었다. 광장은 있으나 사람이 없는 전시용 광장을 만들었을 뿐이다. 광장이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다양한 행위들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비워져 있는 공간이 광장이라 할지라도, 적절한 이벤트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적 크기와 형태들이 필요한데, 이 국가적인 거대한 광장은 그 넓이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고 지배한다.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그 사랑의 완성이 불편하고 어색한 아비의 사랑방식처럼 말이다.

모나스 광장.jpg▲ 모나스 광장
 

근대화된 공간들은 속속 자카르타를 근대도시로 만들어갔으며, 보행자 위주의 도시를 차량 위주로 탈바꿈시켰다. 거대함과 빠름이 도시를 지배하고, 큰 도로와 화교들이 지배하는 상권들이 만들어지면서 텅 빈 도시를 자본으로 채워 나갔다. 20세기 초 15만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961년에는 290만 명으로 거의 20배에 가까운 인구가 증가하였음에도 광장은 외면을 받았고, 2019년 현재 인구 1000만의 도시에서도 광장은 외롭다. 새로운 광장의 단절된 고독은 현재 구도심의 파타힐라 광장의 활기참과 대조된다. 사랑스런 공간 하나 새롭게 가질 수 없는, 사랑 그 쓸쓸함의 도시이다.

자카르타 근대 도시 풍경.jpg▲ 자카르타의 근대도시 풍경
 
3. 벤데타의 가면

 어떤 독재이든 독재는 광기를 동반한다. 히틀러가 그랬고, 무쏠리니가 그랬듯이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은 광기로 시작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열망으로 소멸된다. 32년 간의 철권통치는 따스한 이곳에 겨울보다 더 서늘한 통제와 규율을 만들어 지배했다. 종교는 더욱 신비주의화 되었고, 과포장된 민족주의는 대중을 열광하게 했으며, 대도시의 시민들에게는 대규모의 위락시설을 선물처럼 제공했다. 그럴듯한 포장문구와 함께…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추구하는 하나된 인도네시아’.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그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힘들다. 다양성과 통일성이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이란 말인가??

따만미니.jpg▲ 대규모 위락시설인 따만미니와 민족주의의 과장된 건축양식
 
숨막힐 듯한 전체주의는 전통문화를 민족주의란 이름으로 희화화하면서 전국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슬람 사원부터 시작된 민족주의 건축은 관공서, 병원, 학교 등의 공공기관에 장려되면서, 오역된 민족주의가 마치 진정한 지역주의 건축처럼 무분별하게 건립되었다. 양이 질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30여 년 간 지속적으로 건립된 변질된 민족주의 양식의 건축물들은 이제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지역주의 건축으로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하긴, 독특하기는 하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고 하지 않던가. 30여 년 간 계속된 광기의 독재는 벤데타의 가면 속 영웅처럼 몇몇 젊은이들의 죽음으로 한걸음 전진하게 된다. 이 죽음은 자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며, 근대적 합리성과 민주적 절차가 도입되면서 현상에 대한 비판적 자세와 다양성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인도네시아 건축에서도 이 시기에 젊은 건축가 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현대건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시작된다. 이제 서서히 식민지와 혼란스러운 독립기, 광기의 독재를 품은 도시가 다양성, 자유, 비판 등의 열린 개념들을 품을 수 있는 도시로, 개인의 삶이 살아있는 도시로 변하게 되었다.

4. 도시의 매트릭스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의 매트릭스는 자카르타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중심사무지구(SCBD)의 강력한 자본주의의 성과물과 그 뒤로 이어지는 단층의 조악한 건축물들, 넓은 폭의 도로와 화려한 빌딩들이 정비된 도시의 앞면과 거미줄처럼 얽힌 가로망을 가진 도시의 후면. 단순히 도시개발의 풍경일까? 일년 소득 대략 만 불 정도의 이 도시는 주변으로 일년 소득 5천불에도 못 미치는 5~6개의 위성도시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인터넷을 즐기고, 핸드폰을 일인당 하나씩 보유하고 있으며, 실시간 방송과 유튜브를 즐기고 있다. 도시의 발전속도와 수준에 비해서 너무 빠른 문명의 이기들이 공존하고 있는 이 도시의 일상이다.

중심상업지구.jpg▲ 중심상업지구의 양면성
 
자카르타에는 다양한 켜(Layer)들이 공존한다. 다양하게 중첩된 역사적 켜, 고급과 저급, 현대와 전통, 도시와 시골 등등 대립된 켜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매트릭스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낸다. 30여 년의 독재정치가 만들어낸 왜곡된 종교관 또한 문화에 녹아들면서, 종교와 현세가 뒤엉켜져 이방인들에게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의 혼돈과 몽롱함을 선사한다. 근대사회의 합리성(도구적 합리성과 합목적적 합리성, 이 두 개 마저도 동시에 공존한다), 전통적 지역주의, 개인의 욕망이 소비 가능한 이슬람의 도시, 이미 국제화된 메트로폴리탄 등등…..

다양한 색채의 알약이 수 놓아진 이 도시, 자카르타에서는 그래서 종종 길을 잃기 쉽다. <끝>


*인작칼럼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이 공동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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