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살아있는 역사책 인도네시아 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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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책 인도네시아 한인들”

기사입력 2020.06.0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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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책 인도네시아 한인들”
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 편찬위원

[장면1] 오는 9월 20일 출간을 목표로 한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 집필을 위한 취재를 한창 진행하고 있었던 지난 4월 10일, 자카르타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준 봉쇄 조치 ‘대규모 사회적 제약’(PSBB)이 시작됐다. 모든 건물에 출입할 때 마스크 착용은 물론 체온을 측정하기 때문에, 즐비하게 대면 인터뷰 계획을 세운 필자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은 물론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면역력을 높이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체온을 측정하고 목아픔 증상이 있는 지 자가진단을 한 후, 진하게 인삼차를 마시고 동네 주변 8km 정도를 걸었다. 잠 잘 때는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조금 두터운 옷을 입었다.

[장면2] 마스크 쓰는 게 마치 안경을 쓰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워진 PSBB 기간 중 필자가 맡은 한인기업 역사를 취재하기 위해 자카르타 외곽에 있는 모 한인 기업을 방문했다. 수출 오더(주문)가 취소되거나 연기돼 공장 가동은 멈췄고, 사무실에는 4~5명의 직원만이 근무하고 있었다. 섭씨 30도로 덥고 맑은 날씨였지만 회사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다. 위중한 상황임에도 이 회사 사장님은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업계의 역사를 친절하고 소상하게 설명해주었다.

[장면3] PSBB를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절대선·절대악은 없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자카르타의 맑은 공기와 뻥 뚫린 교통상황은 하루 동안 한인기업 4곳을 방문해 인터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 기간 중 자카르타 시내 오피스빌딩 대부분은 에어컨을 끄거나 약하게 가동했다. 필자가 취재를 위해 방문한 모 회사 사무실은 창문이 없어서 여러 대의 선풍기를 돌리며 더위를 식혀야 했다.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점심식사는 한식집에서 배달된 도시락을 먹으며 잊혀지거나 살아질 뻔한 한인들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기록했다.

장윤원.jpg▲ 인도네시아 한인1호 장윤원 선생과 중국인 부인, 자녀들 [재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회]
 
세 장면은 PSBB 기간 중 필자가 취재한 환경과 과정을 묘사한 것이지만 다른 집필진들도 비슷한 처지에서 한인사 관련 취재를 진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7월 26일 재인도네시아 한인회는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 편찬위원회'를 발족하고, 편찬위원들은 인도네시아 한인 1호 장윤원 선생이 자카르타(당시 바타비아)에 도착한 시점인 1920년 9월 20일로부터 만 100년이 되는 2020년 9월 20일에 한인사 출간을 목표로 함께 달려왔다. 

인도네시아는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해 ‘최초’ ‘1호’ 수식어가 붙은 역사가 많다. 무엇보다 1호가 많다. 1968년 ‘한국 해외 투자 1호’ 한국남방개발(KODECO)의 원목 사업, 1973년 ‘한국 해외 생산 플랜트 수출 1호’인 대상(당시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건설, 1981년 ‘한국 최초 해외 유전 개발 사업’ 서마두라 유전 공동 개발, 1992년 우리나라 대외무상원조 기관인 코이카의 해외사무소 1호 설치 국가. 우리가 만든 고등 훈련기 T-50과 잠수함을 가장 먼저 사준 국가인 인도네시아.

반세기 동안 한국 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출과 성장, 안정적인 정착은 불굴의 의지와 열정을 가진 한국인의 도전 정신을 통해서 일구어 낸 값진 결실이다. 이제 한인기업은 당당히 인도네시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인기업의 50년간 시기와 산업 유형별로 살펴보면, 한국과 인도네시아 각각의 경제개발계획이 상호보완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디딘 후 2020년 현재까지 한인기업 진출 역사를 크게 나눈다면 3단계로 볼 수 있다. 즉, 각각의 출발점이 1968년, 1988년과 1998년이다. 그리고 먼 훗날 지금을 뒤돌아본다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이 인도네시아 한인기업 진출의 네번째 출발점이 될 것이다. 

30여년 전 필자가 근무했던 공장을 방문했을 때, 변함 없이 우뚝 서있는 보리수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이 든든했다. 과거 필자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현지인 청년은 어느덧 머리가 희끗하게 센 중견 직원이 되어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랜 기간 한 자리를 지킨 나무와 사람들이 한인기업의 역사를 확인시켰다. 많은 한국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투자했고, 이들 투자기업에서 가지가 뻗어나와 현지에서 자생적으로 한인기업들이 생겨나 이제는 2천여개의 기업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1세들의 자녀들도 성장해서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기 시작했다. 3세가 청년이 돼 4세를 낳았다.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과 현지에 산 적이 있는 모든 한인들이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의 주인공이다. 잊혀질 뻔했던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흔적을 빠지지 않고 기록하기에는 제한된 시간과 노력이 아쉽고, 꼭 말씀을 들었어야 할 분들을 만나 뵙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 세기 동안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고난과 땀 그리고 결실을 처음으로 기록하는 ‘인도네시아 한인100년사’가 앞으로 나올 ‘120년사’ ‘150년사’ ‘200년사’에 토대가 되길 기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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