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속과 괴담 사이(3)] 데위 카디타(Dewi Kaditha)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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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3)] 데위 카디타(Dewi Kaditha)의 전설

기사입력 2021.02.0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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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도네시아의 무속문화를 한정된 지면에 모두 세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항간에 떠도는 도시괴담이나 영화, 문학작품 등을 통해서, 또는 문화적 단서나 연구자들이 생산한 관련 자료와 논문들을 통해, 우리 곁에 의외로 가까이 다가와 있는 현지 무속과 귀신들의 세계, 그리고 직장과 거래선에서, 또는 일상생활 중 만나게 되는 경건한 현지인들 마음 속, 무의식의 저편을 살짝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려 합니다. 

 

 니로로키둘.jpg

치명적 녹색의 매력, 니로로키둘

 

  빠자자란(Pajajaran)은 1030~1579년 사이 자바 섬 서부 지역에 있었던 순다 갈루 왕국(Kerajaan Sunda Galuh) 수도로 15~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만든 지도엔 지금의 보고르(Bogor) 지역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빠자자란 왕국’이 순다 왕국의 동의어이고 그 기원을 서기 669년으로 보는 시각에 따르면 천년 통일신라에 맞먹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왕국인 셈입니다. 수많은 전설들이 이 왕국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죠.

 

  까디타(Kaditha) 공주의 전설도 그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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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은 오래 전 왕비를 잃고 외동딸 카디타에게 온 마음을 주었지만 여자가 왕위에 오르면 국운이 쇠퇴할 것이란 예언에 따라 젊은 왕비를 새로 들여 왕자를 얻으려 했습니다. 왕비는 요정처럼 빛나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음험한 계략으로 가득 찼던 왕비의 마음 속엔 날로 성숙해지며 아름다움을 더하던 카디타 공주에 대한 시기심이 불타올랐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따라 힌두신 인드라(Indra)를 극진히 섬기던 순결한 카디타 공주는 왕궁에서는 물론 백성들에게 깊이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왕비의 심복 흑마술사의 점괘가 왕비의 시기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카디타 공주는 여왕이 될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 왕좌는 자신이 낳을 왕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왕비는 거의 매일 카디타 공주의 일거수일투족을 왕 앞에서 문제 삼으며 흠집을 잡았고 흑마술을 통해 왕의 총기를 은밀히, 그리고 조금씩 흩트렸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태기가 돌자 왕비는 왕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합니다. 자신과 공주 중 한 명만 선택하라는 것이었어요. 공주를 선택하면 자신은 앞으로 태어날 왕자와 함께 왕궁을 떠날 것이란 위협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흑마술에 빠져 이미 자아를 상실한 왕으로부터 카디타의 추방령을 얻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공주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것을 왕비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왕비는 다시 두꾼(주술사)을 불러들였습니다.

  “그 애가 없어져야 해. 설령 그 목숨이 끈질겨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면 가장 추한 벌레 같은 모습이 되어 매일 죽기를 갈망하며 살도록 만들어야 해!”

  산뗏 저주술로 수많은 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두꾼도 왕비의 서슬 퍼런 악의에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고결하신 왕비님, 하지만 그동안 어떤 저주도 카디타 공주님께 닿지 못했습니다.  공주님은 강력한 수호령의 가호를 받고 계세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만 왕비님의 의지가 그 가호를 깨고 공주님께 닿을 것입니다.” 

  왕비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왕국이 이제 내 손 안에 있는데 제물이 될 만한 소중한 것들이야 넘쳐나지 않느냐? 설령 그것이 국왕의 목숨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내놓을 테니 반드시 까디타가 스스로 죽고 싶어 몸부림치고야 말 저주를 퍼부어 다오!” 

  “그 말씀에 후회 없으시기를……”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밀실로 물러난 두꾼은 곧바로 가장 악독한 귀신들을 소환해 누구도 절대 피하지 못할 가장 강력한 산뗏 저주를 까디타 공주에게 쏘아 보냈습니다.

 

  그날 아침 일찍 작은 마차에 실려 왕궁에서 쫓겨나 멀리 남쪽 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구눙살락(Gunung Salak) 산자락에서 밤을 맞던 까디타에게 그 산뗏이 닿았습니다. 인간들의 눈엔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예기치 않은 폭우가 쏟아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까디타의 수호령들이 그녀에게 폭우처럼 퍼부어지던 악랄한 저주를 온몸으로 막으며 불꽃처럼 소멸해가고 있었습니다.

  <까디타, 어서 일어나거라. 저 남쪽 바다 속에 너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단다.>

  마지막 수호령이 소멸하기 전 낮게 속삭인 목소리에 카디타는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비명을 지르며 젖은 바닥에 뒹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온몸이 타 들어가는 듯한 고통에 휩싸이며 뼈마디가 뒤틀리고 피부가 온통 부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왕비의 악의가 그녀를 지배했습니다. 호송병사들은 커다란 물집이 온몸에 솟아오르며 누런 고름을 쏟아내기 시작한 카디타 공주가 도와달라 외치며 손을 내밀자 기겁을 하고 모두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까디타 공주는 그렇게 폭우 속에 남겨진 채 흙바닥을 뒹굴었습니다.

 

  한참이 지나 조금 정신을 차린 카디타는 자신에게 떨칠 수 없는 저주가 임했다는 것과 살아서 다음날 아침을 맞을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신인지 악마인지 모를  존재의 속삭임을 기억했습니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녹아내리는 온몸을 천으로  감싼 카디타는 어렵사리 말들을 다시 마차에 연결하고 밤새 길을 따라 해안을 향해 마차를 몰았습니다. 그리하여 큰 파도가 부서지는 절벽 위에 도착했을 때 흑마술의 저주를 뒤집어쓴 그녀의 몸은 이미 시체처럼 역겨운 악취를 풍기며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억울하고 슬픈 마음만 들 뿐이었습니다.

 

  밤새 갑자기 밀어닥친 요란한 폭풍우에 잠을 깬 몇몇 해안마을 사람들은 절벽 위에 서 있던 시체 같기도, 귀신 같기도 한 어떤 여인이 성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왕국에서 카디타 공주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던진 카디타에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무섭고 서럽기만 하던 바다가 포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곳에 오는 동안 녹아내린 피부도, 빠져버린 이와 손톱도, 어디선가 잃어버린 왼쪽 눈동자도 원래 자리에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카디타는 온갖 무시무시한 바다 속 정령과 마물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 모두를 압도할 영적인 힘마저 넘쳐났습니다. 예의 흑마술사의 점괘대로 인드라가 그녀를 남쪽바다의 여왕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훗날 ‘키둘 지방의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으로 불리게 되는 니로로끼둘(Nyi Roro Kudul)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한편 왕비는 왕궁에서 엄청난 하혈을 쏟으며 쓰러집니다. 그녀가 바친 가장 소중한 제물은 바로 태 속의 아기였던 것이죠.  빠자자란 왕국은 그렇게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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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로로키둘2.jpg

 

  니로로끼둘에 대한 신앙은 자바 남해안 전 지역에 널리 퍼져 있고 지역마다 사뭇 다른 전설을 가지고 있지만 카디타 공주의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카디타가 바다에 몸을 던진 곳은 수카부미 남쪽, ‘여왕의 항구’로 번역되는 쁠라부한라뚜(Pelabuhan Ratu) 해안입니다. 여왕의 상징인 녹색 옷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여왕의 노여움이 미쳐 불행한 일을 당한다는 괴담이 넘쳐나고 이곳 사무드라 비치 호텔 308호는 니로로키둘에게 헌정된 사당이 꾸며져 있습니다. 이 방엔 여러 화가들이 그린 니로로끼둘의 초상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 중엔 유명 화가 바수끼 압둘라(Basuki Abdullah)의 작품도 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소재를 그냥 지나칠 리 없는 현지 영화계에선 이 308호 객실을 모티브로 호세 뿌르노모(Jose Purnomo) 감독이 영화 <308>을 만들어 2013년에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쁠라부한라뚜(Pelabuhan Ratu)에서는 매년 4월 6일 니로로끼둘에게 풍어제를 지내며 공물을 바쳐 자비와 은혜를 구합니다. 어부들은 공물을 실은 배를 먼 바다에서 가라앉혀 여왕과 친선을 도모하는데 여왕이 공물을 받아들이면 그 댓가로 화창한 날씨와 풍요로운 만선을 허락한다고 믿고 있죠. 

 

물론 니로로끼둘은 가련하고 자애롭기만 한 여신은 아닙니다. 그녀가 강한 것은 그녀 자신의 높은 영력뿐 아니라 마물들로 이루어진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군대를 람뽀르(Lampor)라고도 부르는데 지역에 따라 이들이 도깨비불이나 뽀쫑 (Pocong)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주장도 있지만 옛 자바왕국 복장의 병사들이 군단을 이룬 모습으로 현신한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입니다. 이와 관련해 2019년 군뚜르 수하르얀토 감독이 <람뽀르(Lampor)>라는 영화를 제작해 개봉한 바 있습니다.

 

람뽀르.jpg
<람뽀르(Lampor)> (2019)

 

   한편 전승에 의하면 이 군대의 사령관으로 여왕의 끄라똔을 수호하는 니블로롱(Nyi Blorong)은 녹색과 금실로 자수를 친 끄바야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허리 아래로는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한 이무기로 달이 차오를수록 아름다움과 힘이 절정에 달하다가 달이 기울면 원래의 거대한 이무기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하죠.

 

  또 다른 순다 민화에서는 반유 브닝(Banyoe Bening – ‘맑은 물’이란 뜻)이란 여인이 조조꿀론 왕국의 여왕이 되었는데 나병에 걸리는 예기치 않은 불운을 겪고 절망하며 남쪽으로 요양길에 나섰다가 해안 깊숙이 밀려온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 키둘 여왕이 되었다는 고사도 있습니다. 

 

  갈루 왕국의 라뚜 아유(Ratu Ayu)의 이야기는 조금 더 독특합니다. 라뚜 아유는 아직 아기일 때부터 자신이 자바 땅의 모든 마물들을 다스리는 주인이며 남쪽 해안에서 살 것이라 말했다 합니다. 신둘라 왕(Raja Sindhula)의 혼령도 나타나 자신의 손녀는 순결을 지킬 것이며 설령 결혼한다 하더라도 그 배우자는 자바의 술탄이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렇게 남쪽 바다의 여왕이 된 라뚜 아유는 200년간 남편감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마타람 왕국의 시조 스노빠티를 빠랑꾸수모의 해안에서 만나게 됩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배동선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동포 향토작가. 현지 역사, 문화에 주목하며 저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와 공동번역서 <막스 하벨라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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