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숙] 자카르타 한인의 공간, 꼼플렉과 쇼핑몰 그리고 코리아센터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들은 어떤 집에 살까? 한국인들이 만나는 곳은 어디일까? 한국인들의 역사성이 담긴 공간은? 주택단지와 아파트, 쇼핑몰, 코리아센터, 교회와 성당과 절, 한국슈퍼 등이 한국인들의 주된 공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산다면 가까운 거리에 공원과 산이 있어서 산책을 할 수가 있지만 자카르타에서는 좀 어렵다. 자카르타에서 경험한 공간과 앞으로 생겼으면 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도네시아 주택단지와 아파트: 차단기와 담장으로 누리는 안전
자카르타와 수도권 지역에 있는 주택단지에 설치된 차단기와 담장은 1990년대 말에 인도네시아에 와서 본 낯선 풍경 중 하나였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주택단지마다 입구에 차단기와 경비원들 그리고 단지 주변에 담장을 둘러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했다. 심지어 단지 입구에서 한 번, 다시 작은 단지로 들어갈 때 한 번 이렇게 차단기를 두세 번 거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 인도네시아에 확산하는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은 외부인에 대한 통제가 더 강하다.
위기가 발생하면 외부인의 출입을 더욱 제한한다. 1998년 5월사태 전후로는 동네 골목길도 주민들끼리 차단기를 설치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아예 설계부터 출입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주택단지는 더욱 통제가 심해졌다. 폭은 좁지만 사유지가 아닌 공용 도로와 골목길조차 외부인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한 점은 내 입장에서 당황스러웠다. 인도네시아 정치와 치안이 안정되면서 주택가와 주택단지 통행이 완화됐다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시 한번 통제가 강화됐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주택단지와 아파트의 출입관리시스템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여 범죄와 프라이버시 침해로부터 자유로운 주거환경을 제공한다. 또 물리적으로 외부로부터 분리된 공간을 되면서, 입주민들에게 영역성을 제공한다. 반면 지역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통행제한과 주변지역 단절 등을 야기하는 문제점도 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구별하는 공간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렇게 주변을 담장으로 두르고 차단기를 설치해서 출입을 제한한 주택단지를 꼼쁠렉(영어 Complex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이라 부른다. 우리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주거공간은 콘도미니엄이라 부른다. 이렇게 외부와 구별되는 공간과 그 안에서 형성된 공동체를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라고 정의한다. ‘빗장 공동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빗장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낯선 느낌이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현대적인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시초는 미국의 ‘턱시도 파크’로, 1885년 미국 뉴욕에 직장을 둔 상류층을 겨냥해 근교에 사냥과 낚시 등의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최고급 리조트와 주변 건설된 주택단지로 구성됐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담과 게이트 설치가 용이해지고 경비원을 저렴하게 고용할 수 있게 되면서 중산층 주거지만이 아니라 저렴한 아파트와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들도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됐다.
인도네시아 내 주요 주택단지와 콘도미니엄에는 주거용 건물과 더불어 쇼핑몰과 병원과 학교 등 각종 생활편의시설이 운영되고,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살면서 상호작용을 한다. 목포대학교 고고인류문화학과의 홍석준 교수는 차단기와 담장이 내부의 주민들과 외부의 비거주자들을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정서적으로 구분하는 가시적 장벽 역할을 수행하면서 거주자 자신의 지위를 확인시켜주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그는 차단기와 담장으로 이루어진 주택단지를 선택하는 이유로 공동체 추구, 안전 추구, 범죄에 대한 두려움, 타인(단지 외부자)에 대한 두려움, 질서정연함과 자산 가치의 보존, 단지 관리 서비스 제공 등을 꼽았다.
시티워크와 지하 물류 터널
인도네시아에는 쇼핑몰의 이름에 ‘시티워크’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깨끗한 바닥 그리고 2~4층을 터서 시원하게 보이도록 쇼핑몰 공간을 꾸민 곳으로, 공원을 대신해 쾌적하게 걸을 수 있게 했고, 복도 가장자리는 다채로운 컨셉의 식당과 카페 그리고 상점들로 채웠다. 자카르타 스나얀 플라자, 미드 플라자, 아시타몰 등 자카르타 시내 중심가에는 여러 건물의 지하를 연결해서 지하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게 상가를 만든 곳도 있다. 자카르타의 토지가 제한적이고 땅값이 비싸고 건물이 밀집한 덕분이다.
그럼에도 쇼핑몰은 공원과 거리 등 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대체하기 어렵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학교 교수는 여러 강의와 저서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이 소통하면서 소셜믹스를 이룰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정부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카르타 남부에 위치한 뽄독인다몰은 주변 부촌과 아파트에 거주하는 고소득의 외국인과 인도네시아인들이 주된 방문객이고, 뻐자뗀몰은 주변 주택과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산층 소비자가 주된 방문객이다. 자리에 앉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카페와 식당은 취향과 가격대 등 기호나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이 이용한다. 상업공간에 내재된 견고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장벽을 넘어설 수단이 필요한 것. 그는 "서로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모를 때 선입견 없이 만나 사회가 융합될 수 있다" 며 "공원처럼 모두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산업의 이해관계자들은 기존 도시에서 부족한 공간을 충당하는 방안으로 지하공간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유현준 교수는 서울에서 도심 공원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지하 물류 터널을 제안했다. 자율주행로봇이 드나들 수 있는 지하 물류터널을 개발해서 화물차 운행 감소에 따라 여유가 생긴 차선을 공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서울의 서부간선도로는 기존 도로의 지하에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를 하나 더 만들어서 교통량을 분산시켰다. 서울의 통일로에 지하도로로 만들고 지상을 공원으로 쓰는 공약을 제안한 정치인들도 있다. 자카르타도 이런 방안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담이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아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과 얼마나 교류하나? 아파트 또는 주택단지 밖에 이웃들과 얼마나 교류하나? 안전을 위해 만든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안전할까? 유럽과 미국의 연구자들은 고급 주택단지가 위치한 주변 이웃 마을과의 단절만이 아니라 주택단지 내 거주자 간의 단절로 인해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게이티드 커뮤니트의 폐쇄성으로 인해 담장 안에서 범죄가 증가하기도 한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르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주택단지의 담장이나 아파트의 보안검색대보다 이웃 간의 교류와 거주자들 간의 친밀한 공동체를 통해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들면 1998년 5월사태 때 평소에 현지인 이웃과 잘 지낸 사람은 이웃들이 폭도의 공격을 막아준 반면, 현지 이웃이나 고용인에게 못되게 군 사람은 피해를 입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 사람이 여럿이다.
인도네시아 한인들, 1인 가구 증가와 소통 기회 감소
자카르타에서 자연을 누리고 사람을 만날 공간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트랜드로 1인 가구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사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산책하고 다른 이들과 만날 공원이 적고, 예전과 달리 오프라인 모임도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물가가 오르고 작은 카페와 식당이 문을 닫고 새로 생기는 식당과 카페는 고급화됨에 따라 개인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감소하는 추세이다. 원격근무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직장에서 동료를 만나는 일도 줄었다. 온라인에서 만나서 업무를 논의하지만, 예전처럼 한 사무실에서 함께 보내고 식사하면서 쌓을 수 있는 유대감은 갖기 어렵다. 그럼에도 유현준 교수는 화상통화가 된다고 손잡는 데이트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프라인 공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코리아센터와 한인회관
자카르타에는 한인과 관련된 대표적인 공간으로 한인회가 입주해 있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영사동과 한국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코리아센터가 있다. 코리아센터에는 1980~1990년대에 설립된 회사들이 아직 있고, 이들의 사무실에는 설립 당시의 풍경이 남아있다. 교회, 성당, 절 등 종교시설과 한국학교도 있다. 하지만 종교시설은 포교가 목적이어서 종교가 다른 사람이 이용하기 부담스럽고, 한국학교는 시내에서 멀리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재인도네시아 한인회는 한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한인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인회관은 다양한 한인들이 만나서 화합하는 소셜믹스를 이루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코리아센터는 개인 소유이고 영사동도 한국정부 소유로 되어 있어서, 현재 자리보다는 다른 장소에 한인회관이 세워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안은 기존의 코리안센터에 한인회관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코리아센터는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재건축할 수 있을까? 한국대사관과 한인회 사무실 부지는 한인회를 중심으로 한국기업들이 구입해서 한국대사관과 한인회 사무실로 쓰고 있고, 1980~1990년대에는 자카르타한국국제학교 건물로 사용됐다.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코리아센터 건물과 주차장을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고, 시설은 지하로 옮기면 어떨까? 새로 생길 한인회관이 인도네시아에서 파편화된 개인으로 사는 한국인들이 소통하고 화합하는 장소이자 한국인의 역사성이 보존되는 공간으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유현준 교수는 "모든 것이 새로운 질서로 바뀌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100년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