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할리우드 코닥극장(Kodak Theater)에선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2012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그런데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82년도 시상식에서 미국영화가 판치는 대세를 뚫고 독일영화 한편이 세인의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볼프강 페테젠(Wolfgang Petersen) 감독의 ‘U 보트(원제, Das Boot)’는 비록 수상에는 실패하였지만 감독, 각본, 촬영, 사운드, 필름편집상, 음향효과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폐쇄된 작은 공간내에서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심도있게 표현한 특이한 소재의 수작이었다.
실제로 제1차대전 와중인 1916년을 전후하여 독일의 U-보트는 월평균 150척의 연합군 상선을 격침하여 해상교통로가 차단된 영국은 심각한 식량난과 물자난을 겪어 항복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다행스럽게 1918년에 미국이 참전하여 패망 직전의 영국을 구원하였으며, 제2차대전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재현되어 독일은 다수의 잠수함을 건조하여 대서양과 지중해에서 연합군의 수송단은 물론 순양함까지 공격하자, 영국은 전의를 상실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번에도 미국이 참전하여 구축함과 항공기 중심의 대잠수함 전술개념을 개발하여 U-보트를 제압하면서 결국 U-보트 승무원 4만 명 중 약 3만 명이 수장되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태평양전쟁은 일본연합함대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일본기들이 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55분(현지시간)에 진주만에 대한 공습으로 개전(開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70분이 빠른 오전 6시45분에 이미 미국 구축함이 진주만 외항에서 한 일본잠수함을 격침 함으로써 전쟁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구축함에 의하여 격침된 작은 잠수함이 바로 일본해군 이와사(岩佐直治) 대위가 지휘한 소형(Midget) 잠수함 5척 중의 한 척이었다. 이 2인승의 잠수함은 어뢰 두발씩을 장전하여 상대방 함선까지 접근하여 발사하는 자폭특공대였다. 5척 중 4척은 진주만으로 침투하는 도중 기관고장을 일으켜 싸워보지도 못하고 좌초되었고 나머지 한 척은 진주만 근해에서 경비하던 미국 구축함에 의해 격침되어 포로신세가 되었다. 일본은 이때 전사한 승조원 전원(포로 1명을 제외한 9명)에 대하여 2계급씩을 특진 시키고 군신(軍神)으로 추앙하였다.
위와 같이 100년 전의 1차대전이나 70년 전의 2차대전에서 공통적으로 크게 활약한 전쟁수단이 잠수함이었는데,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지역에선 지금 전시도 아닌 평화시대에 새삼스럽게 잠수함 도입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현재 9척의 핵추진함을 포함하여 총 60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국방예산을 증액하며 꾸준히 현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미래경쟁국인 인도는 금년 1월 말 러시아로부터 핵추진 잠수함을 이미 인도받았으며 향후 항공모함을 도입할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다. 거대한 영토 면적에 비해 인구 소국인 호주는 국방 프로젝트 역사상 최대규모인 360억불에 해당하는 잠수함 증강사업을 검토하고 있는가 하면, 2차대전 당시 연합함대를 편성하여 태평양상에서 미국을 상대로 사생결단의 해전을 벌였던 일본은 기존 16척의 잠수함 전력에 8척을 보강하고 있다.
2011년 한국의 대우해양조선은 인도네시아로부터 3척의 잠수함을 수주하였으며,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타이완, 태국, 방글라데시 등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이 잠수함을 기 보유하거나 도입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와 같이 잠수함 경쟁에 뛰어든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남중국해(the South China Sea)와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해역에는 약 70억 배럴의 원유와 900조 입방의 가스가 매장되어 있어 경제적 이권의 목표물이 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미국 총교역량의 50%인 1조2천억불의 물동량이 남중국해를 통과하고 있으니 자국 경제권익의 보호라는 명분을 내 세울 수도 있다. 모름지기 미래 세계경제 주도권 쟁탈전은 남중국해에서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는 지역국가들이 해양주권 또는 어로 조업권 문제만 놓고 티격태격하던 남중국해에서 경제력과 국방력을 등에 업고 남진하고 있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과의 파워게임 양상에 따라 주변국가들은 자국과 얽힌 이해관계를 가늠하며 미래지향적 전략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특히 1945년 종전 직후부터 인도네시아와 끊임없이 애증관계를 반복해 온 호주는 영토의 북단 도시인 다윈(Darwin)에 미국 해병대 주둔을 허용할 정도로 친미동맹 정책을 강화하여 남진하는 중국세력을 견제함과 동시에 인접국인 인도네시아와의 세력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이렇듯 남중국해를 둘러싼 지역국가들의 필수적인 전략수단이 되어버린 잠수함 보유 경쟁은, 이제껏 주로 지상에서 전개되어 왔던 힘의 균형과 경제 헤게모니 쟁탈전을 앞으로는 저 깊은 해저 속으로 끌어들일 양상이다.
이와 같이 해양경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한국진출기업도 동서로 5천km, 남북으로 2천km에 달하는 인도네시아의 방대한 해역 속에 숨어있는 해양자원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져볼 시점이다. 마침 작년 11월에 입각한 샤맆 수따르조(Sharif C. Sutardjo) 해양수산부 장관은 30년 전부터 한국 청년사업가들과 교류한 경험이 있고 입각하자마자 한국 해양수산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점을 미루어 보면 우리 한인사회와 그리 생소한 관계는 아닐 것이며 그곳의 문턱도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글 : 김문환 / 칼럼니스트
<상기 글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2012년 3월호 '한인뉴스'에 게재된 내용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전재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