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물이 만든 꿈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어둠 속으로 퍼지는 수녀원의 기도소리와 인근 이슬람사원의 아잔 소리가 함께 어울어지면서 잠을 깨운다.
오전 7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산타 클라라 유치원에 원아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 수녀들은 각자의 소임지에서 청소부터 시작해 맡은 일들을 시작한다. 빨래, 텃밭 돌보기, 마당 쓸기, 음식 만들기 등등 주로 살아가기 위한 활동으로, 두세 사람씩 팀을 나누어 돌아가면서 한다.
수녀들도 공부를 한다. 주로 오전에 외부에서 신부나 수사가 와서 수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강의한다.
점심을 먹고 유치원이 끝나면 유치원 수녀들은 대학생으로 돌아가고, 예비수녀들은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모아서 방과 후 수업을 한다.
북부수마트라 주도 메단의 남부지역에 위치한 아씨시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SFMA)는 2004년 한국인 수녀 2명이 시작해, 지금은 한국인 수녀 3명과 인도네시아인 수녀 20명이 함께하는 공동체로 자리잡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비수녀를 시작해 4년을 채운 8명이 첫 서원을 하고 정식 수녀가 됐고, 이중 2명의 수녀가 수녀원의 지원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선교사수녀 중 한 명인 한국인 김명희 바울라 수녀는 선교 사업을 하려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며, 나이 어린 젊은 수녀들이 차례로 대학에서 필요한 전공 공부를 하게 되면 지금 세워 놓은 계획이나 사업들을 키우고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로렌 수녀는 4년 간 200여명의 원아가 졸업했다며, 상급학교에서 산타 클라라 유치원 출신 학생들이 다른 유치원 졸업생들보다 태도와 예절이 바르고 공부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5년 전 수녀원 건물 공사장 인부로 일하던 청년 메안은 성실함을 눈여겨본 수녀원의 주선으로 한국인 후원자들의 후원을 받아 메단에 있는 가톨릭계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후 메단 주교관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블랙매직(저주)에 걸려서 아픈 것이라 생각했던 노총각 리돈은 수녀원과 의료봉사를 온 한국인 의사의 도움으로 한센병을 치료하고, 수녀원에서 분양해준 염소 한 쌍을 잘 키워서 수를 늘려 자립한 뒤 장가를 갔고 올해 6월에 아들을 낳았다.
바울라 수녀는 “염소나 돼지를 분양하면 잘 키워서 새끼를 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대로 돌보지 못해 죽는 경우도 있다”며 “처음에는 처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줬는데, 지금은 가축을 잘 키울 수 있는 성실한 사람을 심사해서 분양한다”고 말했다.
해마다 수녀원에 지원하는 예비수녀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바울라 수녀는 일반적으로 가톨릭 집안 출신들이 수녀가 되는데 올해 들어온 예비수녀 중에는 여러 수녀원을 찾아보다가 한국 수녀님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이 수녀원을 선택하게 됐다는 청원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바울라 수녀는 한류가 수녀원에도 도움이 된다며 어디를 가도 한국 수녀라고 반갑게 맞아 준다고 미소를 지었다.
데일리인도네시아와 만난 인도네시아인 수녀들은 평소에는 텔레비전을 못 보지만 1주일에 한 번 있는 여가시간에 한국드라마를 본다고 말했다.
그들은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로 이야기가 재미있고, 배우들이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와 한국식 예절 그리고 한국음식 먹는 법 등을 배울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아무래도 한국인 수녀님이 운영하는 수녀원에서 생활하다 보니 한국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고 한국식 예절과 한국어에 관심이 간다고 덧붙였다.
수녀원에는 수녀들이 늘어나는 만큼 일도 늘고 건물도 늘었다.
수녀원은 작은 경당과 수녀들과 수련 수녀들이 생활하는 수녀원 건물과 유치원과 공부방 및 손님용 숙소가 있는 부속건물, 작은 가게와 유치원 사무실, 관리인 숙소가 있는 경비동 등 세 개의 건물과 텃밭 및 정원으로 구성된다.
건물 공사가 끝난 후 조성된 텃밭에는 채소와 과일을 키우면서 오리도 키운다. 덕분에 시장에서 사오던 채소와 과일 중 일부를 자급하고 있다.
텃밭 관리팀은 농민의 수호성인의 이름을 붙여서 이시돌팀이라 부르는데, 최근 오토바이를 구입하겠다며 주방에 채소 판매하기, 오리 키우기, 폐품과 박스 수집과 판매 등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바울라 수녀는 “꿈을 갖고 작은 일에도 열심히 하는 어린 수녀들이 기특하다”며 “시골에서 자라서 농사도 잘 짓는다”고 말했다.
수녀원에서는 한국이나 자카르타에서 후원자들이 모아서 보낸 입던 옷, 새 옷, 가방, 신발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재활용품 가게 CARITAS(사랑)를 열었다.
그 동안 무료로 나눠주거나 바자회에서 판매했는데, 지금은 가게에서 일부를 판매하고 그 수입은 공부방 아이들의 간식비로 사용한다.
주로 유치원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이용하는데, 한국 물건이 더 튼튼하고 세련될 뿐만 아니라 가격이 저렴해서 선호한다. 더욱이 옷을 사기 위해 이슬람신자들도 스스럼 없이 수녀원에 오게 돼, 지역주민들과 종교를 초월한 교류를 나누게 됐다.
꼴베공부방은 새 학기를 맞이해 북적거린다. 지난 8월 17일 독립기념일에는 수일 간 각종 운동대회를 열어서 다 같이 상을 받고 푸짐한 간식을 먹었다.
‘메단 어린이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있는 학생들이 손수 모은 학용품과 책, 옷을 바자회에서 팔아서 후원금을 보내 주었다. 수녀원에서는 이 돈으로 공부방 아이들 중 5명에게 돼지를 분양해 주었다.
얼마 전에는 자카르타에서 김겨레 학생(대학1)이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피리를 사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갔는데, 지금도 공부방 아이들과 수녀님들이 피리를 연습하고 있다.
바울라 수녀는 학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수녀들도 피리를 처음 불어보아서 신기해했다며,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재능기부를 해주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꼴베공부방에는 현재 유치원부터 중학생까지 60여 명의 어린이들이 방과 후에 2시부터 4시반까지 공부한다. 수녀들은 나이도 다르고 학습 수준도 다른 아이들을 한꺼번에 지도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성적이 오르고 건강해지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더욱이 공부방 아이들은 수녀들의 관심을 더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도 하고 사고를 치기도 한다. 생계를 위해 새벽부터 저녁 늦게 까지 일하기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늘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부족하다. 아이들의 마음이 보이는 수녀들은 마음껏 혼내지도 못한다.
저녁 식사 시간에 만난 수녀들에게 바람을 묻자, 수녀원이 발전하는 것, 더 많은 수녀들이 참여하는 것, 예비 수녀는 수련기간을 잘 마치고 수녀가 되는 것, 더 공부를 해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 등이라고 답했다.
10년 차 수녀원은 공사장에서 벗어나 이제 나무와 풀이 자라는 푸른 정원을 가진 예쁜 집이 되었고, 10대와 20대의 젊은 수녀들은 무서운 지도수녀의 잔소리와 호통에도 끊임 없이 꿈을 이야기하며 바지런히 움직인다.
도둑도 지키지만 가끔 수녀들이 키우는 오리 사냥에 나서는 멍멍이들, 아침부터 유치원 마당을 달리다 넘어져 울다가도 교사 수녀의 한 마디에 까르르 웃는 아이들, 하루 종일 밭으로 교실로 분주히 움직이다가 늦은 오후 잔디에 앉아 성경을 읽는 수녀들. 그렇게 모두가 한울타리 안에서 어울려 성장하고 있다.